2024년 3월 20일 수요일

조선시대 기상청

■ 조선시대 기상청

■ 조선시대 기상청

농업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날씨의 예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종대왕이 천체관측 기구 등을 만든 이유도 천체 현상을 관찰하여 천재지변이나 강우량 등을 미리 예측하여 농사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변화무쌍한 기상 변화를 분석해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첨단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일지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기상청은 기상레이더와 기상위성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하고도 때로는 예측이 빗나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그렇다면, 첨단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날씨를 어떻게 예측했을까?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기상청처럼 날씨를 예측하는 관청이 있었다. 당시에는 해와 달, 바람과 구름의 상태를 살피거나 동물의 특이한 행동을 보고서 날씨 변화를 예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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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날씨를 살피고 천문을 관측하는 일관부(日官部)라는 관청을 두었고, 신라에는 천문박사(天文博士)라는 관직을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때에는 서운관(書雲觀)이라는 관청이 기상청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관리를 뽑아 천문학을 배우게 한 뒤 날씨와 천체 현상을 기록하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일을 했다. 서운관은 조선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세조 때인 1466년 관상감(觀象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관상(觀象)은 천체가 변하는 여러 현상을 관측하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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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서운관을 관상감으로 바꾸면서 관리 20명을 뽑아 책력(冊曆)을 쓰고, 날씨와 천재지변을 예측하는 일을 맡게 했다. 책력(冊曆)이란 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을 날의 순서에 따라 적은 것이다. 나라의 주요 행사를 치르기에 좋은 날짜와 터를 찾는 것도 관상감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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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감 관리들은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측우기(測雨器:실제로 문종이 세자시절에 만들었다고 함)로 비가 내린 양을 기록해 장마철이 언제 시작되고, 비는 얼마나 내릴지도 예측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관상감 관리들이 날씨나 천재지변을 기록하고 예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만약 날씨나 천체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큰 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의 비서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관리들이 천문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관상감 관리에게 벌을 줄 것을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조선 10대 왕 연산군은 관상감에서 지진이 났음을 아뢰자, 어리석은 사람들이 천문을 논하는 것은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관상감을 없애 날씨나 천재지변을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관상감의 이름을 사력서(司曆署)로 바꾸고, 날씨를 기록하는 일만 하도록 했다.

보통 조선의 왕들은 천재지변이 나면 스스로 덕이 부족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히 했다. 그러니 나랏일과 백성에는 관심이 없고 연일 잔치를 벌였던 연산군은 천재지변을 이유로 향락을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사력서는 다시 관상감이라는 원래의 이름과 기능을 되찾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