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된 남자, 광해 1/4
■ 왕이 된 남자, 광해 1/4
광해군은 조선시대 왕들 중 소설이나 드라마 ·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이고, 시대적 상황 또는 작가나 PD, 영화감독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연산군과 같은 폭군의 부류로 인식되어 왔지만,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광해군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해석이 나와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폭군 광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광해군이 살았던 시대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위기의 시대였다. 광해군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한 생애에 다 겪었다. 임진왜란 때는 세자로서 분조(分朝)를 이끌고 직접 전장을 누볐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 나 강화도와 제주도에 위리 안치되어서 겪었다. 왕이 아닌 신분으로 그런 참사를 보면서 자기를 돌보는 하녀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19년간을 더 살았다.
광해군은 어떻게 해서 왕위에 올랐을까?
원래 선조는 정비 소생의 아들이 없었고 후궁 출신인 공빈 김씨가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다. 따라서 장자인 임해군이 마땅히 왕위에 올라야 했지만, 그는 무식하고 난폭한 면이 있었다. 선조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계문제를 놓고 고심하게 된다. 다른 후궁에게서 난 많은 왕자들이 각기 왕위를 넘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인빈 김씨는 자신의 소생인 어린 신성군을 세자로 책봉시키려는 공작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었다. 조정과 민간의 인심은 영민한 광해군에게 쏠리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세 살 때에 죽은 처지여서 스스로 처신에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북쪽으로 쫓겨 가는 몸이 되었고, 후사를 시급히 정해야만 했다.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일단 세자책봉 문제는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광해군은 세자로서 분조(分朝, 임시로 세자에게 임금의 일을 대행하게 하는 제도)를 맡아 전란(戰亂) 중에 동분서주하며 그 소임을 다했고, 조정과 백성들의 명망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광해군의 왕위계승은 요지부동할 것 같았고 그 자신 또한 현군의 자질을 키워 나갔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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