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살문 1편
■ 홍살문 1편
홍살문(紅箭門)은 주로 충신·열녀·효자 등을 배출한 집안이나 마을 또는 서원이나 향교 그리고 능과 묘에 설치되어있다. 집안의 재실에도 설치하기도 하였는데, 신성시 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홍전문(紅箭門) 혹은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문(門)이라고 부르지만, 출입의 기능보다는 상징성이 더 중요시 되었던 문(門)이다. 문이지만 주변에 담장이 없었기 때문에 방어를 하거나 출입을 통제하는 목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홍살문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해서 세워지게 되었는지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세워진 장소로 보아서는 경의(敬意)를 표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발견된 칠갑산 암각화에 약 1,500년 전 마을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 암각화에서도 현재와 같은 홍살문의 형태를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이미 홍살문 문화가 삼국시대 말 고구려 및 백제 일대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했으며, 유교를 권장하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충신·효자·열녀를 바람직한 인물로 추앙하여, 이들의 집 앞에 일종의 표창하는 의미로 홍살문을 세우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열녀문이 홍살문의 일종으로 분류되며 당대에 홍살문이 집이나 마을 앞에 있다는 것은 가문 및 지역에 큰 명예가 되었다. 이 때문에 홍살문을 유치하기 위해 남편을 잃은 여성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온 마을에 형성되기도 했다고 한다.
9m 이상의 둥근기둥을 지주석 위에 고정시키고 두 개의 기둥을 양쪽에 두고 문짝은 달지 않았다. 기둥과 기둥 사이 위에는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뾰족한 나무를 나란히 박아 연결하고, 그 가운데에는 삼지창을 설치하거나 태극 문양을 설치했다. 하지만 태극문양과 삼지창이 없는 형태도 많다. 홍살문(紅箭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은 기둥의 색을 붉은색으로 칠했고 상부에 설치한 화살모양의 나무살 때문이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공격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풍속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거나 대문에 뿌리는 것 등은 붉은색을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홍살문의 붉은색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홍살문 앞에는 대개 하마비(下馬碑)를 세운다.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도 홍살문 앞에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란 뜻이다. 홍살문부터는 청정하고 신령스런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