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1443년 12월, 세종대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과인이 직접 글자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소. 간단한 글자이지만 수없이 많은 말을 표현할 수 있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자)\라는 뜻을 담아서 이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지었소."
이 발표에 신하들은 깜짝 놀랐다. 임금이 우리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아주 비밀리에 진행했다. 세종은 우선 믿을 만한 신하에게 지시하여 우리 조상이 사용한 언어는 물론 중국·인도·몽골·티베트·일본 등 세계 각국의 언어에 대한 자료와 책들을 직접 구해오게 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참고하여 눈병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글자를 연구하고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눈병이 심해져서 치료 차 지방으로 요양을 갔을 때도 글자 연구에 필요한 책과 자료를 가지고 갔을 정도였다. 건강이 나빠지자 세자인 향(훗날의 문종)에게 나랏일을 맡기면서도 한글 창제에 끝까지 힘을 쏟았다. 세종은 이토록 중요하게 여긴 한글 창제 작업을 왜 비밀리에 진행하였을까?
세종이 훈민정음을 발표하자, 집현전 부제학이던 최만리 등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상소를 잇달아 올렸다.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중국의 예법과 제도를 본받아 왔고, 이미 한자를 널리 쓰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중국에서 이를 알게 된다면 중국에 비난을 당하여 부끄러울 것입니다." "한자와 다른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무리는 몽골, 여진, 일본 등 오랑캐들뿐입니다. 우리가 이들처럼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쓴다면 중국을 따르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간단하고 배우기가 쉬운 문자였기 때문에,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되어 나라의 법과 제도를 업신여기고, 학문을 공부한 선비들을 함부로 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양반들도 있었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에 어울리는 우리 글자를 왜 비밀리에 만들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될 것이다. 상소에서 보듯, 이에 대한 반발이 몹시 거셀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반포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세종대왕은 농사를 잘 짓는 방법, 시간과 날짜를 제대로 세는 방법, 간단한 병을 치료하는 법, 도덕과 예절을 잘 지키는 법 등을 책으로 엮어서 백성이 이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만들어도 백성이 글자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또한 백성이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관아에 제대로 호소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토지나 재산을 못된 관리나 권력자에게 억울하게 빼앗기는 일도 많았다. 이를 항상 안타깝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백성 누구나 글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