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 월요일

예종 1편

■ 예종 1편

■ 예종 1편

예종은 1450년(세종 32년)에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황(晄) 자는 명조(明照)이며, 세조가 즉위하자 해명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 하지만 예종은 재위 1년3개월 만에 스무 살의 나이로 급사하고 만다. 독살설, 복상사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말 그대로 급사(急死)였다. 재위기간이 1년여 밖에 되지 않아 조선 역사에서는 별로 존재감이 없는 왕 중의 한 분이다.

예종은 본래 서열대로라면 형인 의경세자가 있어 왕이 되지 못했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경세자는 용상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고, 후에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의경세자의 부인은 왕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드라마 속에서 예종과 성종, 연산군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보아 왔던 인수대비이다. 당시 인수대비는 시동생(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죽기 직전까지는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인수대비에게는 의경세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둘 있었는데, 예종이 죽은 후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잘산군, 자산군)이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조선 전기 문물을 완성시키고 유교적 통치이념을 완성시킨 성종이다. 성종이 된 자을산군은 한명회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합작으로 예종을 독살했다는 설도 있다. 설(說)일 뿐이지만 설(說)로만 볼 수 없는 당시의 여러 정황들이 있기는 했다.

야사에는 세조의 큰아들인 의경세자가 현덕왕후 권씨(단종의 친모)의 저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1년 먼저 죽었으므로 이것은 꾸며진 이야기로 보인다. 세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카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가 꿈을 꾸는 데 현덕왕후 권씨(단종 친모)가 저주를 내리면서 세조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 피부병이 생겨 세조는 죽기 직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피부병이 세조 얼굴까지 번졌고, 온 몸이 썩어 가고 세조에게서는 심한 악취도 풍겼다고 한다. 세조가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렸다는 것은 실록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조 초기에 강력하게 실천했던 왕권강화와 부국강병 정책도 세조 말기로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한명회, 신숙주 등 권신들에게 힘이 실렸다. 세조는 재임기간동안 왕권강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신녹훈을 했다. 그렇게 공신이 된 사람들은 계유공신과 적개공신으로 나뉘어진다. 이들을 각각 구공신과 신공신으로도 불리어 졌다. 구공신은 세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계유정란에 도움을 준 신하들인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이고, 신공신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귀성군 준과 남이 등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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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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