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종 2편
■ 예종 2편
세조는 의리를 지키는 왕이었다. 공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술을 좋아하는 세조는 공신들과 허물없이 술자리도 하며 지냈다. 이 점은 태종 이방원과 다른 점이었다. 세조는 태종처럼 공신들을 숙청하지 않고 그들을 돌보았다. 이처럼 세조가 공신들을 죽이지 않고 우대하자 세월이 갈수록 한명회, 신숙주 등 구공신들의 세력은 점점 강대해졌다. 세조가 추구한 왕권강화정책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그러할 때 세조는 병이 들었고 세자는 아직 채 스물도 안 된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세조는 죽음을 앞두고 변화를 시도했다. 아직은 어린 세자를 위해 구공신들인 한명회나 신숙주를 경계 할 신진세력을 육성하며 키우려고 했다. 세조는 자신의 친동생 임영대군의 아들 귀성군 준과 권람의 사위인 남이를 총애하고 있었다. 이때 이시애 난이 터졌다. 이시애는 길주 출신으로, 함길도를 근거로 한 토착 호족이었다. 이시애는 세조의 중앙집권체제 강화의 일환으로 한양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자, 크게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시애는 지방자치파였던 것이다. 이시애는 함길도 백성들에게 세조의 뜻을 받들어 중앙의 여러 중신과 결탁한 반신(叛臣)을 평정했다고 속여 그들의 협력을 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절대 권력을 누리던 한명회, 신숙주 등 구공신들에게 절대 절명의 위기가 찾아 왔다.
이시애는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과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들을 살해하는 동시에, 조정에 사람을 보내어 강효문이 한명회, 신숙주등의 중신과 결탁해 모반하려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죽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반란이 아니라 그런 간신들을 제거하기 위한 의거(義擧)라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접한 세조는 한명회, 신숙주 등 구공신들을 일단 대궐 안에 구금시켰다. 물론 세조는 이들이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너무 커져버린 구공신들을 제압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세조는 구공신들을 제외한 반란토벌단을 편성했다.
세조는 한명회, 신숙주 등 권신들을 감금한 채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왕족 귀성군 준을 함길·강원·평안·황해의 4도병마도총사에 임명하고, 강순·어유소·남이 등을 대장으로 삼아 3만명의 군사를 함흥을 향해 출발하도록 했다. 이들 토벌단은 난 발생 후 7개월 만에 어렵사리 난을 진압했다. 세조는 이시애 난을 진압하는 데 성공한 장수들에게 공신 녹훈을 내리고, 조선역사상 유래 없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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