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 월요일

예종의 여인들 1편

■ 예종의 여인들 1편

■ 예종의 여인들 1편

조선의 제8대 임금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차남으로 왕자시절의 군호(君號)는 해양대군이었다. 단종을 제외하면 조선 왕조 27명의 역대 임금 중 가장 단명한 불운한 왕이기도 하다. 원래 그는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맏형인 의경세자와의 나이차가 워낙 많은데다가(12살) 의경세자는 여러모로 유력한 후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경세자가 만 19세의 나이로 급사해버렸다. 단종을 죽인 것에 대한 단종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저주란 야사도 있지만, 실제로는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먼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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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로써 해양대군은 세자가 되었고, 세조가 죽기 하루 전에 선위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 세자 시절엔 얌전하고 똑똑해서 신하들이 문종‘ 같은 군주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았고 성년이 되기 전인 19세에 즉위했기 때문에 어머니인 정희왕후(세조부인)가 예종과 동석하여 수렴청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예종의 나이는 거의 성년에 가까웠기 때문에 수렴청정은 곧 거두어졌다. 실제적인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은 그 다음 성종 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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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년 세자이던 예종은 11세의 나이로 16세의 장순왕후(章順王后·1445~1461년) 한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했다. 장순왕후 한씨는 유명한 한명회의 셋째 딸이다. 권력의 단맛을 본 한명회가 세조의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셋째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 혼인한 그 다음해에 세자빈은 회임(懷妊)하여 아들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한달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하였고, 인성대군 또한 얼마 살지 못하고 3세의 나이에 풍질(風疾:신경의 고장으로 생기는 병의 총칭)로 죽었다. 인성대군이 태어난 해가 1461년이니 예종의 나이 12세 때 이미 아버지가 된 것이다.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아들을 일찍 본 임금이기도 하다. 장순왕후 한씨는 남편이 왕이 되기도 전인 꽃다운 나이 열아홉에 죽었으므로, 남편이 왕이 되고 나서 왕후로 추존되었다.

한씨가 죽자 세자빈 자리가 공석(空席)이 되었다. 왕실에서는 한백륜의 딸을 세자궁에 들이고 종5품 후궁인 소훈(昭訓)에 오르게 했으니, 이 인물이 바로 훗날 예종의 비가 되는 안순왕후(安順王后·1445~1499년) 한씨이다. 세자빈으로 바로 선발하지 않고, 우선 후궁으로 들인 것은 아버지 문종시절 세자빈이 폐출된 후 후궁 출신인 승휘 권씨를 승격시켜 세자빈으로 삼은 관행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세자시절 예종에게는 이미 숙의 최씨와 이씨가 있었는데도, 한백륜의 딸인 소훈 한씨가 세자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행실이 단정함은 물론이고,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을 낳은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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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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