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 월요일

예종의 여인들 2편

■ 예종의 여인들 2편

■ 예종의 여인들 2편

1468년 9월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왕위를 이어받자, 소훈 한씨는 바로 왕비(안순왕후)의 자리에 올랐다. 후궁 출신으로 실질적으로 왕비가 된 첫 사례였다. 후궁에서 왕비가 된 그녀의 사례는 이후 성종의 후궁으로 있다가 왕비에 오르는 폐비 윤씨와 정현왕후의 사례로도 이어지게 된다.

한편,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부인이었던 인수대비는 머지않아 자신의 남편이 왕이 되어 중전에 오르면, 자연히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으면서 대비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세자였던 남편이 왕이 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죽어버리면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의경세자 사후에 자신의 장남인 월산대군이 세손(世孫)이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기대했지만, 시아버지 세조가 결국 차남인 해양대군을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세자로 선택해버리자 엄청난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예종과 월산대군은 작은아버지와 조카 관계이긴 해도, 나이 차이는 고작 4살밖에 나질 않았고, 예종이 의경세자의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되었을 때의 나이는 8살이었다. 그래서 이 일이 있은 후 인수대비는 자신의 야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는 이유로 시아버지 세조와 시동생인 예종을 속으로 내내 원망하고 있었을 터이다.

예종은 아버지 세조를 이어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부왕(세조)의 국상(國喪) 중에 고질병인 족병(발이 썩어들어감)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남편은 물론 아들이 왕이 될 기회를 놓친 인수대비는 아마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으리라. 간혹 드라마 등에서 예종은 독살 당했고, 그 배후에 인수대비가 있는 것처럼 그려지기도 했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극적인 설정으로 보여진다. 어쨌든, 인수대비는 원래 남편인 의경세자가 왕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죽어 세자빈의 지위에 있었으나, 둘째 아들 자산군이 성종이 되어 1471년(성종 2년) 요절한 의경세자가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자, 공식적으로도 왕비의 지위를 얻었고 인수대비가 되었다.

예종의 비 안순왕후는 남편이 왕이 되고, 원자(元子)인 제안대군까지 있었으니 왕비로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비로서의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종이 승하하고 후계자 자리도 자신의 아들 제안대군이 아닌 예종의 죽은 형님(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성종)에게 넘어가면서, 왕실에서 그녀의 위상은 뚝 떨어지게 되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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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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