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종의 여인들 경빈 박씨 1편
■ 중종의 여인들 경빈 박씨 1편
중종의 조강지처인 신씨가 폐비되고 중종의 후궁이 된 경빈 박씨! 연산군 11년에 채홍사(採紅使)에 의해 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이듬해 중종반정이 일어나 반정공신 박원종이 그녀를 양녀로 삼았고, 그의 힘으로 후궁이 될 수 있었다. 슬하에 아들 복성군과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를 낳았다. 복성군은 세자(인종)보다 나이가 많았다.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세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경빈 박씨는 자기 소생인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할 야망을 품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종이 특별히 그녀를 가장 총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비(繼妃)인 장경왕후가 일찍 죽은 후, 경빈 박씨가 중전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가문이 좋지 않다는 이유(흥청출신)로 무산되었다. 문정왕후 윤씨가 중종의 두 번째 계비가 되어 경원대군(명종)을 낳음으로써 경빈 박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폐출되는 운명이 되고 만다.
중종 22년(1527년) 2월25일, 동궁(세자:호)의 13세 생일잔치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당시 동궁은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로 훗날 인종이 되는 인물이다. 잔치에 동원된 궁녀들은 복잡한 화장실을 피해 으슥한 곳으로 가서 볼일을 봤다. 한 궁녀가 소변을 보려고 동궁 뒷동산으로 갔다. 볼일을 보다가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죽은 쥐 한마리(사지와 꼬리를 자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짐)가 매달려 있었고, 생나무 조각으로 만든 방서(榜書: 써서 걸어둔 글)가 걸려있었다.
동궁(東宮)은 세자가 거처하는 곳으로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자는 해생(亥生)이고, 2월 25일이 생일인 데다가 ‘해(亥)’는 돼지에 속하고 쥐도 돼지와 비슷하므로 당시의 조정 대신들은 동궁을 저주한 주술이라고 하여 난리가 났다. 유모는 정현대비 윤씨(중종의 어머니)에게 보고하는 한편 동궁의 외할아버지 윤여필에게도 알렸다. 범인을 색출해 처벌하라는 뜻이었다. 궁중에서의 이런 저주사건을 조사하면 모든 궁녀들이 혐의 대상이었다. 말로만 조사해서는 안되기에 참혹한 고문이 뒤따랐다. 그 과정에서 온갖 개인사정과 원한관계가 폭로되면서 궁중의 여러 사람이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우려한 정현대비(성종비)는 그냥 조용히 덮기로 했다. 하지만 동궁에 대한 저주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3월1일, 정현대비는 중종과 왕비에게 특별 점심을 내렸다. 장경왕후 승하 후 두 번째 왕비로 들어온 문정왕후 윤씨는 중종의 사랑을 못 받는 형편이었다. 당시 중종이 경빈 박씨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정현대비는 함께 점심이라도 하며 부부간의 정을 쌓으라는 뜻에서 특별 점심을 내렸던 것이다. 중종은 대비의 뜻에 따라 강녕전으로 가서 문정왕후와 함께 점심을 들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