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요리사, 숙수 1편
■ 왕의 요리사, 숙수 1편
최근에는 요리를 소재로 하는 TV프로그램이 많다. 가정에서 요리를 주로 하는 사람은 분명 여성이고, 예로부터 우리는 어머니의 손맛을 최고로 여겨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은 남자 요리사가 대세이다. 요즘 소위 맛집으로 유명한 음식점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은 남자요리사로 가득 차 있다. ‘요섹남’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요리 잘하는 남자’는 요즘 여성들에게 매력적이고 인기도 많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남자요리사가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유교이념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 남자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광경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숙수’라고 불리우는 남자 궁중요리사들이 존재했다. 조선시대의 풍속화로 어느 고관댁의 잔칫날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 있다. 음식준비로 바쁜 부엌에 재료를 나르고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드는 남자들이 가득하다. 고관의 명으로 출장 나온 궁중요리사들인 것이다.
조선시대 존엄한 존재였던 임금님의 안녕과 건강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임금님의 안녕과 건강의 근본은 음식, 즉 수라(水刺)였다. 일반적으로 궁녀와 나인, 상궁들이 만들었을 거라는 인식과 달리 왕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조선 수라간의 주역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는 수라간에서 요리하는 나인과 상궁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진귀한 왕실 요리를 만들어 내는 수라간에는 고기요리, 찜요리, 채소요리 등 각각의 분야에 전문가들인 남자 요리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궁중의 요리사들은 까다로운 레시피의 궁중요리 수백 가지를 재래식 요리도구를 이용해 준비해야했다. 또, 왕이 원하면 언제라도 요리를 대령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 대기해야했고, 때로는 고관들의 집에 불려가 출장요리를 하기도 했다. 이들의 신분은 관노(官奴)였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상을 받거나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지만, 왕실의 잔치와 제사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조선시대 왕실 요리사들은 모두가 기피할 정도로 고된 직업 중 하나였다고 한다. 게다가 행여 음식에 문제라도 생기면 처벌을 면치 못했다.
1903년, 왕의 수라에 관한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홍합을 먹은 고종의 이가 부러진 것이다. 요리의 책임자로 ‘숙수 김원근(金元根), 사환 김만춘(金萬春), 숙수패장 김완성(金完成), 각감 서윤택(徐潤宅)’ 등이 처벌을 받았다. 모두 남자였다. 이렇듯 수라간의 주역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 많은 나인과 상궁들은 무엇을 했을까. 기미상궁은 임금의 수라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맛보는 역할을 했고, 나인들은 수라간에서 대전 혹은 침전으로 음식을 나르거나 식재료 운반, 설거지 등 요리사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수라상궁들은 이런 나인들을 지휘하고 감독하며 수라간 일을 주재했지만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았다. 임금님의 음식은 남자가 만들었던 것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