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도읍지를 정하라 1편
■ 새 도읍지를 정하라 1편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국새를 받아 고려 국왕으로 즉위했다. 태조는 즉위교서를 통해서도 국가의 기본 방침을 고려의 법제(法制)와 고사(故事)에 의거한다고 발표했다.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가 바뀌었음에도 ‘역성(易姓)혁명’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태조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개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땅‘ 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시급했다.
태조는 즉위 한 달 후 국정의 최고기관인 도평의사사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지시를 내리고, 고려의 행궁이던 한양의 궁궐을 수리하게 하였다.(지금의 청와대 터) 태조는 고려 말부터 개경의 지덕이 쇠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는 서운관(천문·역일(曆日)을 담당하는 부서)의 보고를 여러 차례 받고 있었다. 고려는 개경(개성) 외에도 세 곳의 서울을 더 두고 있었는데, 동경(경주), 서경(평양), 남경(한양)이 그것이다.
태조가 도평의사사에 지시를 내린 20여 일 후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시중 배극렴, 조준 등은 태조에게 한양 천도를 보류하고자 건의했다. 한양에는 아직 궁궐, 성곽 등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신하들이 옮겨가기 위해서는 민가(民家)를 빼앗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궁궐과 성곽, 그리고 관사를 배치한 후에 옮기도록 주장하였다.
태조는 이 건의를 받아들이고, 다른 도읍지 후보를 물색하게 했다. 그 후보지는 양광도 계룡산이었다. 태조는 새 도읍지 계룡산의 지세를 살피고자 행차했다. 태조는 내려오는 도중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를 지나면서 왕사(王師) 무학대사도 같이 가자고 청했다. 태조는 출발 후 4일 만에 한강에 도착했으나 몸이 아파 며칠 동안 한강 근처에서 머무르기도 했다. 태조가 다시 출발하려고 하자 도평의사사에서 좋지 않은 보고가 올라왔다. 왕비가 병으로 몸이 편치 않고, 지역에 도적 떼가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태조는 “재상들은 오랫동안 개성에 살아서 도읍을 옮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구실은 천도를 중지시키려는 것이다”라고 역정을 냈다. 태조는 “예로부터 왕조가 바뀌고 천명을 받은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도읍지를 결정하고자 한다. 만일 후대의 왕이 나의 뜻을 계승해서 도읍지를 정하려고 해도 신하들이 반대하면 옮길 수 있겠는가”라고 자신이 천도하는 이유를 또 다시 강조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