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9일 화요일

조선의 시작 3편

■ 조선의 시작 3편

■ 조선의 시작 3편

이로부터 열흘 후 7월 28일 태조는 즉위교서를 발표했다. 태조는 즉위교서에서 “나라 이름은 그 전대로 고려라고 하고,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모두 고려의 고사(故事)에 의거한다”라고 밝혔다. 태조는 고려의 국새를 받아서 고려의 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정해진 것은 이로부터 약 7개월 후의 일이었다.

태조는 즉위 며칠 후 밀직사 조임을 명나라에 파견해서 공양왕을 대신해서 자신이 군국의 사무를 통솔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황제의 재가(裁可:허가)를 바라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이 때 태조가 사용한 직명은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였다. 태조는 황제의 재가를 아직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왕’대신 ‘국사’의 직책을 사용한 것이다. 조임은 3개월 후 명나라 황제의 외교문서를 받아와서 보고했다.

“고려는 산이 경계를 이루고 바다가 가로막아 하늘이 동이(東夷)를 만들었으므로 우리 중국이 통치할 바는 아니다. 나라의 국호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빨리 와서 보고하라.”

명 황제는 고려는 자신이 통치할 범위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국호를 정해서 보고하라고 한 것이다. 새 나라의 건국을 인정해 준 것이다. 태조는 국호를 정해 명나라에 보낼 외교 적임자를 고민하고 있었다. 예문관 학사 한상질이 자청해서 가겠다고 나섰다. 한상질은 세조의 책사(策士) 꾀주머니로 잘 알려진 한명회의 할아버지이다. 한상질은 신하들이 모여서 논의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의 두 가지 국호(國號)를 가지고 명에 갔다. 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에서 따 온 것이고,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옛 이름이다.

명 황제는 조칙을 내렸다. “동이(東夷)의 국호로 ‘조선’의 칭호가 전래된 것이 오래 되었고 아름답다. 이 이름(조선)을 근본으로 해서 하늘을 본받고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

명의 황제는 ‘조선’과 ‘화령’ 중에서 동이의 역사가 오래된 ‘조선’을 택한 것이다. ‘조선’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래서 단군이 세운 조선은 고(古)를 붙여 고조선(古朝鮮)이라 하게 되었다 태조는 바로 나라 이름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꾸어 선포했다. 1393년 2월 15일이었다. 태조는 국호가 정해진 기쁨으로 전국에 사면령을 내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