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과 어머니 1편
■ 이순신과 어머니 1편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시작한 직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4월 13일). 그는 나흘 동안(4월 16~19일) 말미를 얻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종군했다. 이 때의 난중일기, 특히 맨 마지막 구절은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마음을 느끼게 한다.
『16일 병자. 흐리고 비가 내렸다. 배를 끌어 중방포(中方浦)에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실어 본가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고 통곡하니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집에 이르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퍼부었다. 남쪽으로 떠날 일도 급박했다. 부르짖어 통곡하며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아버지 이야기는 별로 없고, 어머니 변씨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어머니가 이순신에게 미친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더구나 변씨의 아버지 변수림이 무장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변씨가 이순신의 무과 진로에 대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이순신의 아내로 보성군수 출신 방진의 외동딸 방씨를 얻도록 중매를 선 것이 동고 이준경 대감이었다고 전하는데, 어머니 변씨가 주도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다소 유약하고 소극적이던 아버지 이정에 비해 똑 부리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어머니 변씨는 이순신에게만은 장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문무(文武) 양면을 살펴보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문과 급제에 대한 기대를 품으면서 셋째 아들 이순신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준 것이다.
서울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훈련원(조선시대 군사 교육 기관)이 근처에 있었던 것 또한 그의 진로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린 시절 동네 대장으로 활쏘기를 즐겼다는 이야기를 보면 무장의 딸이었던 변씨로서는 이순신의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무인은 문인에 비해 낮은 급으로 여겨져 일반 사대부 집안에서 무과를 준비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했을 때 선영에 성묘를 갔다가 묘소 앞의 망주석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하인들 몇이 달려들어도 들어 올리지 못하자 혼자 힘으로 이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순신의 체력이 보통 선비들과는 남달랐다는 것이다. 어머니 변씨는 이러한 아들의 면면을 일찍이 눈여겨보고 당시 사회 통념과 상관없이 그의 무과 진로를 추천한 것이다. 자신과 같이 무장 출신의 딸인 며느리 방씨를 맞도록 한 것도 이순신의 적성과 취미, 남다른 체력과 커오면서 보여준 리더십 및 대장적 기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무과로의 진로선택 폭을 넓혀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방씨는 이순신이 서른두 살에 급제할 때까지 무과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버지 방진과 함께 남편을 도왔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