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宣祖 2편
■선조(宣祖) 2편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명종은 창빈 안씨의 소생 3명의 아들을 불러 놓고 익선관(翼善冠)을 벗어 써보라고 하였다. 하성군(훗날 선조)의 두 형은 차례대로 익선관을 써 보는데, 막내인 하성군(河城君)은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명종이 그 연유를 물으니 "임금님이 쓰시는 것을 어찌 감히 신하가 쓸 수 있겠습니까?" 아직 어린 막내지만 하성군(河城君)의 기지(機智)가 남다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명종이 "임금과 아버지 중에 누가 더 중요한가?"라고 물으니, 하성군(河城君)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임금과 아버지는 다르지만, 충(忠)과 효(孝)는 본래 하나입니다“ 명종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 하성군(河城君)이 참으로 기특하고 예뻤을 것이다.
선조(宣祖)는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4번째로 재위기간이 긴 왕이었다. 영조는 약 52년, 숙종은 약 46년, 고종은 약 44년, 선조는 약 41년이다. 선조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왕이지만, 그는 업적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조선 왕조사에서 가장 참혹한 동아시아 최대의 전쟁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또 조선 역사상 최대의 옥사가 벌어져 아까운 선비 1,000여명이 억울하게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되었다. 선조(宣祖)는 자신의 치세 때 시작된 당쟁(黨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이후 조선이 당쟁의 폐단으로 멍들게 만들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현명하게 대처하기는커녕 혼자 살겠다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아직 후사를 정하지 못했던 선조(宣祖)는 국가비상상태를 대비하여 급한 대로 둘째인 광해군을 세자로 세워 분조(分朝)를 맡겼다. 이때 광해군은 피난을 간 선조를 대신해서 너무 열심히 그 임무를 수행한 탓(?)에 선조(宣祖)의 눈 밖에 나버렸다. 무능하고 방계승통의 콤플렉스를 가진 선조는 똑똑한 광해군을 질투한 듯하다. 명나라도 선조의 무능함에 광해군에게 왕위를 넘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선조(宣祖)는 잔머리를 굴렸다. 전쟁의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양위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으면서 양위(讓位)선언을 자그마치 10여 차례나 하게 된다.
물론 왕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은 양위(讓位)를 거두어줄 것을 수도 없이 진언하여야만 했다. 모두들 왕 앞에 나아가 양위(讓位)를 취소할 때까지 엎드려 통곡까지 하면서 왕을 달래야 하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물론 그 장소에 광해군도 함께 해야 했다.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여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그 중차대한 시점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선조(宣祖)는 재위 중에 이런 상황을 자그마치 15번이나 연출했다고 한다. 신하들의 충성심을 재확인하고 무능함을 감추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일 것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