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이鳳伊 김선달 2편
■ 봉이(鳳伊) 김선달 2편
민간에서 전승되어 오던 김선달 설화가 처음으로 문헌으로 나타난 것은 1906년 황성신문에 연재된 한문소설 〈신단공안(神斷公案)〉의 네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김선달이라는 인물이 있다. 여기에서 그려낸 김선달은 평양 출신의 선비 김인홍(金仁鴻)이고, 호가 낭사(浪士)이다. 하지만 이것도 소설 상의 설정일 뿐이고, 실존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구전설화에서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김선달은 몰락양반 출신으로 큰 뜻을 품고 한양에 올라왔지만, 변변찮은 문벌과 서북인을 차별하는 풍조로 멸시 당하자, 권세가와 부유한 상인 등을 골탕 먹이고 당대의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위트 넘치고 의식 있는 해학적(諧謔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선달은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얻지 못한 양반을 부르는 칭호이다. 사기꾼 기질이 강한 중년에 비해 젊었을 적에는 무술에 능한 청년이였기에 무과에 급제해 선달 호칭을 받았다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설(說)로 학질에 걸린 척하고 시험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인즉, 한여름에 김선달이 솜옷을 둘둘 껴입고 시험장에 나타나자 시험관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에 학질에 걸렸다고 일러두자, 시험관이 병이 옮을까 무서워서 멀찍이 떨어져서 경전을 외우라고 했고,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김선달은 대충 아무렇게나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른 보내버려야겠다 싶어서 그냥 바로 합격시켰다는......???
이렇게 해서 초시(初試)에 합격했고, 이후 중앙의 유력자를 찾아가 적당히 뇌물(?)을 건네면서 말빨로 구워삶아 합격증을 샀다고도 한다. 아무튼 어느 쪽이든 제대로 시험을 본 것이 아님을 얘기하는 것 같다. 조선 후기에는 과거 응시자가 수만 명에 달했지만 관직은 제한적이었던 데다가, 세도정권의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재산이나 배경이 없는 급제자들은 평생 미관말직조차 얻지 못했다. 이런 사회상황을 비꼬는 설정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름 앞에 별호(別號)처럼 붙은 ‘봉이(鳳伊)’는 어떻게 얻어졌을까?
김선달이 장날에 시장 구경을 갔는데, 닭을 파는 가게 안에 유난히 큼직하고 빛깔이 좋은 닭 한 마리를 발견했다. 주인에게 저 봉황을 어디에서 얻었느냐고 묻자, 주인은 봉황이 아니라 장닭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봉황은 실존하는 새가 아니라 상상의 새이다. 김선달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 묻자, 닭 장수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다가 김선달이 계속 봉황 같다며 값을 물어보자, 욕심이 생긴 주인은 마침내 봉황이 맞다고 말하고 비싼 값에 팔았다.
김선달은 그 장닭을 안고 관아로 달려가 희귀한 봉황을 구했다며 사또에게 바쳤다. 사또는 거짓임을 알고 화를 내며 볼기를 치자, 김선달은 자신은 닭장수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관아에 끌려와 사또의 추궁을 받은 닭장수는 김선달에게 받은 닭값에 볼기 값까지 더하여 몇 배의 배상을 해주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봉이(鳳伊) 김선달’이라고 불렀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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