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과 소춘풍 2편
■ 성종과 소춘풍 2편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교방에서 기생 수업을 하던 중, 동기(童妓)가 15,6세가 되면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여 성인지례(成人之禮)를 올려야 했는데,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재주를 높이 산 많은 부자들이 서로 많은 돈을 내고 머리를 얹어 주겠다고 나섰으나 그녀는 수양모의 권유는 물론 많은 부자들을 뿌리치고 스스로 가난한 선비를 택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도 장안의 돈 많은 한량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으나, 애당초 돈에 관심이 없던 그녀는 돈을 아무리 많이 가져와도 풍류를 모르면 몸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는 선비라도 풍류를 아는 한량들은 거침없이 받아들였다.
인생을 달관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소춘풍(笑春風)은 천하한량들의 벗이 되어 이름을 떨쳤고, 그 소문이 서울에까지 퍼져 선상기(選上妓:뽑혀 올라온 기생)로 올라와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소춘풍은 가무(歌舞)와 시(時), 노래에 뛰어나고 해학(諧謔)과 기지(機智)가 넘쳤다고 전해진다. 소춘풍은 궁중곡연(宮中曲宴)에 참석하여 성종과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을 상대하여 더욱 이름을 떨쳤는데, 연회 중 좌중을 사로잡는 소춘풍의 해학과 기지는 성종의 아낌과 사랑을 받기에 이르렀고, 모든 대신들도 그녀의 뛰어남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소춘풍은 3수의 시조를 남겼는데, 그녀의 시조들은 그 자체보다 창작 일화를 통해 유명해졌다. 성종이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면서 술을 따르게 하자, 즉석에서 시조를 지어 문신을 치켜세우고 무신을 낮추었다. 이에 무관들이 노여워하자 무신인 병조판서 앞에 가서 두 번째 시조를 지어 무신을 치켜세웠다. 이에 문신·무신 간에 시비가 일자, 다시 세 번째 시조를 지어 문무 양반을 다 섬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세 작품들은 왕 앞에서 신하들을 희롱하는 순발력 있는 재치가 두드러지며, 임금 뿐 아니라 문무백관을 쥐락펴락한 그녀의 대담함이 단연 돋보인다. 소춘풍의 작품들은 시조 자체보다는 돌직구적 성격과 미모와 아울러 가무(歌舞),해학(諧謔), 시화(詩話),기지(機智)와 재치(才致)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완벽하게 갖춘 조선 기생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어느 날 소춘풍이 성종의 부름을 받았다. 연회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궁중의 어느 별전(別殿)에서 성종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춘풍에게 술잔을 건네며 “오늘 밤은 너와 함께 하고 싶은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군왕과 기생 사이에 오직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인데, 성종은 명령대신 의견을 구했다. 소춘풍도 그런 성종을 군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나이로서 자신을 한갓 기생이 아닌 한 사람의 여인으로 대해주는 그 풍도가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후궁이 되면 평생 다른 남자와 정을 나눌 수 없기 때문에 궁궐 생활은 싫다고 말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