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성종과 소춘풍 3편

■ 성종과 소춘풍 3편

■ 성종과 소춘풍 3편

임금의 여인으로 한평생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소춘풍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한 말이었다. 일개 기생이 임금의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던 성종은 “인생에 있어서는 네가 제왕이로구나.” 하고 빙그레 웃었다. 자기는 임금이면서도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건만, 소춘풍은 일개 기생이면서도 자기 인생만은 자기 뜻대로 살려는 의지와 자유가 부러웠던 것이다.

성종의 요구를 거부(?)하고 곱게 돌아온 소춘풍도 ‘그 분이 임금만 아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누가 대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등불을 밝혀 방안으로 인도하고 보니 아무리 미복잠행(微服潛行)을 하였어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성종이 아니신가. 소춘풍이 놀라 부복(俯伏)하며 “성상께서 이 어인 일이시오니까?” 하니 성종은 시종 시치미를 떼면서 “허허! 이 사람 나 이서방이라고 하네.” 했다. 이리하여 성종과 소춘풍은 궁궐 밖에서 임금과 기생이 아닌 한 여자와 남자로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에도 성종은 궁중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소춘풍을 불렀다. 그녀도 전과 다름없이 발랄하게 행동하였다. 궁궐에 들어가면 임금과 기생이요, 밖에서 은밀히 만나면 이서방과 그의 연인으로 지냈다. 그리하여 임금의 성은을 입었으면서도 기생의 신분으로 자유롭게 살아간 소춘풍이란 기생의 역사가 생긴 것이다.

성종이 승하한 후 연산의 등극에 따라 소춘풍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승하한 임금의 총애 받던 기생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았다. 성종이 38세의 나이로 승하할 때 그녀의 나이 28세. 그 후 소춘풍은 영흥에 들렀으나 수양모가 이미 죽고 없는 집은 그를 정붙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나 안변의 석왕사에 들러 임종 전에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모습의 운야대사를 만났다.

암자를 내려오던 소춘풍은 언뜻 운야대사가 자신의 아버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석왕사로 돌아갔으나, 그때는 이미 운야대사는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얼마 후 금강산 유첩사에서 운야대사가 입적했다는 전갈을 받고 떠나는 석왕사 주지스님에게 애원하여 머리를 깎고 운야대사의 법사에 참석하기 위해 주지스님을 따라 나섰다. 소춘풍의 법명은 운심(雲心).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 한창 고운 나이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