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 월요일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2편

■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2편

■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2편

조선은 정책적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농본정책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가 정책에 힘입어 특히 세종대에는 집현전 학사들과 장영실을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과 농업 기술을 연구하였고, 농사를 과학적으로 지을 수 있게 해주는 많은 과학 기구가 발명되었다. 장영실은 1421년(세종3년)에 윤사웅·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이후 세종의 총애를 받아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가 되면서 관노의 신분을 벗게 되었고, 궁중기술자로 활약하게 된다. 상의원(尙衣院)은 왕의 의복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는데, 별좌는 종5품의 문반직이었다. 월급은 없는 무록관(無祿官)이었고,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현감 정도의 지위였다.

세종의 배려(配慮)로 궁중 기술자가 된 장영실은 얼마 뒤 별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이를 기록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별을 살피는 기구만큼은 중국보다 앞서 있다. 그러니 이를 잘 활용하면 더 훌륭한 기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세종의 명을 받고 정인지, 정초, 이천 등의 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관측기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몇 번의 실패를 거쳐 1433년쯤 마침내 천체의 위치나 움직임 등을 살피고 기록하는 기구인 간의와 혼천의를 만들어냈다. 세종은 그 뛰어난 성능에 탄복하며 간의대를 설치하고, 그 곳에 이 기구들을 두어 세자들에게 해와 달, 별 등이 움직이는 이치를 배우게 했다.

뒤이어, 세종의 명령으로 장영실이 만든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지구를 반으로 자른 듯 한 솥 모양의 청동으로 만든 해시계이다. 그 속에 침을 세워 놓아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절기를 재고, 그림자 끝의 위치에 따라 시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이 해시계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사람이 많이 오가는 큰길가인 종묘 앞에 세워 놓았다. 특히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간 옆에는 쥐, 소, 호랑이, 말 등의 동물을 그려 놓아 쉽게 시간을 알 수 있게 했으니, 정말로 백성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해시계는 밤이나 흐리고 비가 오면 시간을 알 수가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물시계이다. 물시계는 중국에서 기원전 7세기에 발명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매일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항상 사람을 시켜서 시간을 재어야 했다. 이를 게을리 하면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고, 시간이 안 맞아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사람이 일일이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물시계를 만들고자 하는 바램으로 중국 송나라의 과학자 소송(蘇訟)이 결국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장치들이 어찌나 복잡한지 소송이 죽은 뒤에는 아무도 그것을 다시 만들지 못해 곧 사라지고 말았다. 12~13세기에는 아라비아 사람에 의해 쇠로 만든 공이 굴러 떨어지면서 종과 북을 쳐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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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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