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2편
■임진왜란 2편
원래 조선의 속령이었던 대마도는 일본과 조선의 눈치를 살피며 살던 중 이번에 히데요시 편에 붙어 함께 이 전쟁에 참가하였다. 제1군에 소속된 요시토모가 부산진성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안내에 따라 고니시의 제1군은 거침없이 부산진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고니시의 협박에 분노한 정발 첨사는 6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7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의 선두에 서서 결사적으로 왜적의 진공을 막았다.
그러나 왜병들은 조총으로 무장하여 재래식 활로 맞선 조선군의 결사적인 항전을 무색하게 하였다. 부산진성의 위급상황을 알게 된 다대포 첨사 윤흥신은 정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달려와 왜적들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노장 정발과 함께 최후까지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7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부산진성에거 갑자기 총소리와 함성소리가 멎었다. 정발 첨사를 비롯한 700명의 조선 병사들이 모두 전사한 것이다. 개전(開戰)한지 불과 2시간여가 흘렀을 뿐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군대는 일본군에게 함락당하고 성 안의 백성들은 몰살당했다. 일본군은 이후에 서평포, 다대포를 공격하였다. 서평포도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곧이어 다대포도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다대첨사 윤흥신과 백성들이 희생당하고, 유키나가 군은 동래성으로 진격한다. 지원군으로 가던 경상좌병사 이각은 중과부적이라 판단하여 도주하였고, 동래부사 송상현은 끝까지 성을 지키다 전사했다. 이어서 일본군은 김해로 전진해 김해성의 남녀노소 1천명을 몰상하고 김해성도 함락시켰다.
연이어 부산 웅천, 그리고 낙동강하구 등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들어온 일본군은 제1군에서 9군까지 15만 8천여명의 병력이 조선으로 물밀 듯 올라왔다. 4월 20일엔 밀양도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파죽지세로 적은 서울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선조는 류성룡을 도체찰사로 임명하고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문인으로 전쟁을 잘 모르는 류성룡은 여진족과의 전공으로 유명한 신립을 추천하여 삼도순변사로 임명한다.
신립장군은 기병 3천을 이끌고 충주로 향했다. 도중에 모집한 병사들을 합하여 총 8천의 병사가 충주에 주둔했고, 일본군에 패한 경상도순변사 이일이 충주의 신립에게 합세하였다. 일본군이 조령으로 몰려오자 신립은 탄금대를 중심으로 포진하여 적과 결전을 벌이고, 이 탄금대전투에서 조선군 3천명이 전사하고, 신립과 그의 부하 김여물 등이 모두 전사하였다. 충주의 패전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임금의 피난을 결정하였고, 4월 30일 새벽에 피난을 떠나 개성으로 향했다. 궁의 주인이 떠나자, 도둑들이 궁에 침입하여 약탈과 방화가 자행되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