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8일 월요일

명나라 황제 만력제 2편

■ 명나라 황제 만력제 2편

■ 명나라 황제 만력제 2편

만력제는 조선 백성들이 왜군들 때문에 수확을 하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명나라의 재정을 털어 산둥성의 쌀 백만 석을 매입해 조선 백성들을 위해 원조했다. 쌀 1석이 89kg이므로 100만석이면 자그마치 약 9만 톤의 쌀을 조선에 지원해준 것이다. 더군다나 현대적 운송 수단이 없던 시대에 9만 톤의 쌀을 조선에 실어다 날랐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다시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만력제는 20만 대군을 다시 지원군으로 파견하여 일본군을 막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더구나, 명나라에서 내란이이 일어났을 때에는 자국을 위해서 단 한 푼도 개인 재산을 내놓지 않았던 만력제가 정유재란 이후 조선의 전후 복구사업을 위해 자신의 개인 재산인 은화 200만 냥을 추가로 지원하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야 정말 고맙지만, 중국인들의 입장에선 도대체 만력제는 왜 이리도 조선에 지극정성이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에선 만력제가 ‘도대체 어느 나라 황제인 것이나’ 는 불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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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만력제는 후대 중국인들에게 고려천자, 조선천자라는 비아냥과 함께 나라의 재정을 파탄 낸 원흉 취급을 당해 제사도 전혀 받지 못했고, 현대에 와서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의 준동(蠢動)으로 유골이 불타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당파를 막론하고 만력제를 추종하는 인물들이 생겨났다. 숙종 때에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만력제의 공덕을 기리는 만동묘(萬東廟)를 세웠고, 조선 조정에서는 대보단(大報壇)을 세우게 되었다. 조선에서는 민간과 정부 할 것 없이 만력제의 공덕을 기리게 되었고, 이 만력제에 대한 제사는 자그마치 1937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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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보면,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명나라를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며 맹목적으로 사대하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