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장國葬 2편
■ 국장(國葬) 2편
시신을 목욕시킨 후에는 두 번에 걸쳐 시신을 묶고 이불과 옷에 싸는 렴(殮)과 관에 넣는 입관(入棺)을 행한다. 처음 하는 렴이 소렴(小殮), 두 번 째가 대렴(大殮)이다. 소렴과 대렴 시에 사용되는 의복과 이불은 소렴 시 19겹, 대렴 시 90겹이다. 영조의 경우에는 90벌의 옷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 비(妃)인 의인왕후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직후에 상이 있었기 때문에 시집올 때 해온 옷을 집어넣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무튼 이 렴은 갖은 종류의 옷과 옷감이 모두 사용되는 엄청난 물량을 요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렴(殮)은 단순히 시신을 묶고 관에 넣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조선시대 왕의 장례기간은 보통 3개월에서 5개월이다. 겨울이라도 이 기간은 시체가 부패할 우려가 높은데 더운 여름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물론 평상을 마련하여 그 위에 관을 놓고 평상 밑에는 빙반이라 하여 석빙고에서 떠온 얼음을 채워 넣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시체에서 흐르는 액과 악취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 엄청난 양의 옷과 이불은 이 기간 동안의 불쾌함을 없애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렴이 끝나고 입관을 하면 왕과의 관계에 따라 각기 상복을 입게 된다. 왕과 부자(父子) 관계면 3년 복, 조손(祖孫) 관계면 1년 복을 입고,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도 흰 소복(素服)을 입는다. 왕이 죽은 지 3일 후 종묘에 왕의 죽음을 고하고, 5일을 기다렸다가 입관한다. 이 닷새 동안 옥새는 왕실의 가장 어른, 통상적으로 대비에게 전달된다. 다행히 적장자가 있으면 자연스레 그에게 왕위가 이어지지만 후사가 없는 경우는 대비의 결정에 따라 다음 왕이 정해진다. 6일이 지나면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의식으로 국새를 전해 받고 왕위계승을 공포한다. 유교적 장례절차에서 새 왕은 선왕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인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요한 국정을 비울 수 없으니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최고의 예를 갖춰 왕위를 이어받아야만 한다.
새 국왕은 전 국왕의 장례 절차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간략한 의식을 거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므로 즉위식의 분위기는 한껏 침울하다. 왕의 즉위식은 궁궐의 중심인 정전(正殿)에서 하지 않는다. 아직 왕도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즉위식은 궁궐의 중심인 정전의 문 앞에서 한다. 경복궁에서는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근정문 앞에서 열었다. 문 앞에서 옥새를 받아 왕이 된 다음에 정전으로 이동해서 새 국왕은 즉위 교서를 반포한다. 그 내용은 대체로 선왕의 공적을 찬양하고 부족한 자신이 이를 계승하여 국왕이 되었음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으로서 처음 해야 하는 국가 대사가 선왕에 대한 장례가 된다. 이 절차를 어긋남이 없이 잘 마무리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왕의 정통성과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의 장례는 새로 등극한 왕과 신하들의 시험대이기도 했다. 즉위식을 마친 후에는 아침과 저녁의 문안과 곡(哭), 초하루와 보름날에 의정부에서 모든 관리를 거느리고 제사를 지내는 등의 여러 제사가 장례일 까지 이어진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