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된 남자, 광해 3/4
■ 왕이 된 남자, 광해 3/4
선조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선조의 애첩이었다가 광해군의 첩까지 된 일급참모 상궁 개시에 의해 선조가 독살 당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또 조선왕위를 승인하는 명에서도 광해군의 출신을 빌미로 왕위 계승을 인정하는데 주저하고 있었고 왕위를 이어 받은 후에도 계속 딴지를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장악한 광해군과 대북파의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조정과 나라의 일을 제멋대로 농락하는 당파들을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왕권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왕권 확립이 최우선 과제였다.
유영경이 정계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한 것도 무리한 조처는 아니었고, 광해군을 감싸던 정인홍 · 이이첨 등 대북파가 득세한 것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정치과정이었다. 광해군은 즉위하자 조정의 기풍을 새롭게 하려고 했다.
당파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쓰고 임진왜란으로 파탄이 난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며, 난중에 불타 버린 경복궁 등 궁궐을 새로 짓거나 손보아서 왕실의 위엄을 살리고, 조세를 고르게 하여 민생을 구제하려고 했다(대동법 실시).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한때 원병을 보내겠다고 까지 한 누르하치가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뻗고, 명나라는 늙은 호랑이로 쇠약해 가는 국제질서에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판국인데도 그의 형 임해군은 광해군의 정사를 비방하고 다녔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세력 또한 틈만 나면 광해군을 깎아내리려고 했다. 이들은 당인들과 결탁하여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언제나 광해군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광해군은 일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벼슬아치들은 임해군을 추대하려다 실패하자 장자계승권을 주장, 명나라에 이 사실을 알려 압력을 넣으려고 했다. 임해군 자신은 난행(亂行)을 거듭하면서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분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끝내 임해군은 교동도에 유배를 당했다가 사약을 받았다.
- 4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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