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도읍지를 정하라 3편
■ 새 도읍지를 정하라 3편
하윤은 “무악은 명당(明堂)”이라고 찬성했다. 그러나 조준, 권중화 등 대부분의 신하들은 “무악 남쪽은 땅이 좁아서 도읍으로 불가하다”라고 반대했다. 현장을 다녀 온 신하들의 의견이 둘로 나누어진 것이다. 태조는 자신이 직접 현장을 보고 결정하고자 했다. 태조는 무악을 둘러보고는 도읍지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지만, 서운관 책임자 윤신달과 유한우가 “지리의 법으로 보면 무악은 도읍이 될 수 없습니다.” 라고 반대했다. 서운관은 그 내부에서 조차 “개성의 지덕이 쇠하였다” 와 “아직 개성의 지덕이 남았다”라고 의견이 나누어져 있었다.
태조는 신하들에게 도읍지에 대한 의견을 문서로 올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왕사 무학대사에게도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무악으로 모시고 왔다. 무학대사는 “(남경은)사면이 높고 수려하며 중앙이 평평하니 성을 쌓아 도읍을 정할 만합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하소서”라고 조언했다. 무학대사는 남경을 도읍지로 찬성하면서 대신들의 동의를 구하라는 단서를 단 것이다. 태조는 무학대사의 조언에 따라서 재상들에게 논의를 부쳤다.
조선의 설계자로 자부한 정도전이 먼저 의견을 내놨다. 정도전은 무악은 나라의 중앙에 위치해서 뱃길이 통하는 것은 좋지만 골짜기를 낀 좁은 곳이어서 궁궐, 종묘, 사직, 시장을 세울 만한 자리가 없다고 반대를 했다. 그는 아울러 사람들이 풍수지리의 구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정도전은 국가를 잘 다스리는 것은 풍수지리의 성쇠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달려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또한 지금은 도읍을 옮길 시기가 아니라는 ‘시기상조론’도 주장했다. 현재는 고려의 무너진 기강을 세우고 백성들의 힘을 길러서 나라의 터전을 굳게 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신하들 일부는 여전히 개성에 미련을 갖고 있고, 태조가 도읍지 선정에 힘을 실어준 하윤이 주장한 무악은 많은 신하와 서운관이 반대를 하는 등 새 도읍지를 둘러싼 주장은 각양각색이었다. 태조는 이렇게 신하들의 의견이 분분한 데에는 천도를 싫어하는 마음도 깔려 있다고 보았다. 태조는 “개성으로 돌아가 소격전(昭格殿)에서 해결하리라” 라고 결단을 내린다. 소격전은 해 달 별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도교의 사당이다. 태조는 스스로 도읍지를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