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종반정 4편
■ 중종반정 4편
중종(中宗)은 즉위 후 명에 보낸 사신을 통해 연산군이 병으로 순순히 양위한 것으로 허위 보고했다. 조선의 첫번째 쿠데타로 추대된 인물 중종(中宗)은 안타깝게도 왕으로서의 자질은 물론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인물이었다. 생각해보면, 중종은 중종반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그 이름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의 업적을 보면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연산군의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13세)을 왕위에 옹립하고 실권을 거머쥔 채 모든 것을 연산군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치하에서 영화를 누린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이는 박원종 등 세력 등 상당수가 그런 자들이기도 했고, 또 다른 반정을 예방하기 위해 적을 만들지 않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원종 등은 대부분의 신하들을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임명하고, 중종의 부인인 신씨는 연산군의 측근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비시켜버렸다.
연산군의 치하에서 목숨을 겨우 부지하느라 노심초사했고, 이제 연산군도 죽고 본인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박원종 등의 반정공신의 위세에 어깨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연약한 왕 중종.
즉위한 지 십년 쯤 지나자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이 자연사하고 중종도 어느 정도 왕 노릇 하게 되자, 중종은 반정공신들을 견제할 새로운 세력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때 중종은 이조판서 안당의 추천으로 당시 사림들의 대표격인 조광조를 등용했다.
중종은 스스로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연산군이 대신들에 의해 끌려 내려가는 것을 직접 목도한 사람으로, 평생을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항상 강력한 후원자를 곁에 두었다. 하지만, 그 후원자가 지나치게 컸다 싶으면 다른 신하들과 모의해 그 후원자를 가차 없이 제거하는 방법이 중종의 전매특허(중종의 용인술) 였다.
중종은 박원종 그늘 뒤에서 초기 시절을 보내다가, 그 뒤 조광조를 등용하여 힘을 몰아주면서 왕위를 보존하다가 결국에는 조광조를 내쳤으며, 다시 김안로에게 힘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왕위를 지키다가 다시 김안로를 내쳤는데, 이 때 죽은 사람이 오히려 연산군 때보다 많았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종은 이런 방법으로 39년 동안 왕위를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왕위를 지키면서도 별다른 업적은 없었고, 재위 39년만인 1544년 향년 57세에 병으로 죽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