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치부심切齒腐心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인다, 비장한 각오로 노력하다.
절치부심(切齒腐心)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인다, 비장한 각오로 노력하다.
끊을 절(刀/2) 이 치(齒/0) 썩을 부(肉/8) 마음 심(心/0)
잠을 잘 때 코를 고는 것과 같이 이를 가는 뽀드득 가는 소리는 거슬린다.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는 것 말고 일부러 아래 윗니를 힘주어 부딪칠 때는 서슬이 퍼렇다. ‘자식은 오복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고 하는데 소중한 이를 간다면 필시 정상이 아니다. 거기에다 마음까지 썩인다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를 갈고(切齒) 속을 썩인다(腐心)는 말은 몹시 화가 나거나 분을 참지 못하여 독한 마음을 품고 벼른다는 각오가 드러난다. 눈앞에 닥친 난관을 헤쳐 나가려고 비상한 결심을 할 때 이를 악문다는 표현도 있다. 어금니를 악물고 이를 가는 咬牙切齒(교아절치)도 같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 刺客(자객) 열전을 두고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때 활약한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루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 한 몸을 던졌던 협객들의 의기를 높이 평가했다. 이 중에 秦(진)의 始皇帝(시황제)를 암살하려던 荊軻(형가, 軻는 수레 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형가는 원래 衛(위)나라 사람이었지만 진에 의해 망하자 燕(연)나라로 가서 살았다. 독서와 칼 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태자 丹(단)에 의해 발탁되어 상경의 존대를 받았다.
태자는 진나라에 볼모로 가 있다가 도망쳐 온 적이 있어 진시황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진의 세력이 점차 동북쪽의 연나라까지 뻗치자 태자는 형가에게 계책을 물었다. 당시 진의 樊於期(번오기)란 장수가 망명 와 있었는데 그의 목과 연나라 지도 속에 비수를 가져가서 황제를 암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태자 단이 머뭇거리자 형가는 번오기를 직접 찾아갔다.
잔혹하게 대했던 진시황에게 원수를 갚는 방법은 현상금이 걸린 장군의 목을 가져가서 처치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번오기가 비장하게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밤낮으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고대하던 것입니다(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 차신지일야절치부심야).’ 그러면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렇게 비장하게 거사에 나섰지만 최후의 순간에 실패하고 형가는 피살됐다.
한 두 번의 실수로 치욕을 당했더라도 잊지 않고 되갚을 각오를 가져야 옳은 길이다. 성인이라면 그 상대를 감화시켜 더 좋은 길로 이끌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어렵다. 조선시대 淸(청)과 倭(왜)에 유린당하고도 이를 악문 채 대비를 하지 않았기에 연속으로 치욕을 안았다. 오늘의 국제관계서도 마찬가지다. 사방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피해를 끼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하니 말이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