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의 여인 인성왕후 박씨
■ 인종의 여인 인성왕후 박씨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嫡子)이다. 재위 8개월 만에 죽음으로써 앞서 1년 2개월을 재임한 예종의 기록을 깨고 조선 왕조 최단기간 왕위 기록을 세웠다. 좋은 왕이 될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중종의 후궁 경빈 박씨가 먼저 복성군을 낳았으나 서자이므로 당연히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종의 비(妃)는 인성왕후 박씨. 중종 9년(1514년) 10월에 나주 박씨 박용과 어머니 의성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성왕후 박씨는 중종 19년 3월에 11살로 10살인 인종과 결혼하여 20여 년간을 세자빈 생활을 했다. 친시어머니는 장경왕후이지만, 인종을 낳고 칠 일만에 산후병으로 돌아가시고, 대신 문정왕후가 시어머니 역할을 했다.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인종의 비(妃)로써 치맛바람의 대명사인 여장부 문정왕후 같은 시어머니의 며느리 역할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스트레스로 마음고생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진 남편과 부창부수인 인성왕후는 긴 세자빈 시절을 별 탈 없이 조신하게 시어머니를 모신 듯하다. 그만큼 인성왕후 박씨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도 없고, 기록도 없다. 긴 세자빈 생활을 청산하고 인종이 즉위함에 따라 31세에 왕비가 되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시! 인종이 일찍 죽음으로써 32세에 본의 아니게 대비마마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최단시간 왕비에서 대비로의 승격일 것이다.
그 당시 조정의 모든 실권은 시어머니인 문정왕후가 가지고 있었으니 아마도 조용히 몸을 낮추고 살다가 선조 10년(1577년) 64세에 자녀도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인종은 숙빈 윤씨, 귀인 정씨 등 두 명의 후궁도 두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누구에게서도 자식을 보지 못하고 후사 없이 돌아가셨다. 아마도 인종에게 불임의 원인이 있었던 것 아닐까.
인종의 유언이다.
"내가 죽게 되었으므로 동생 경원대군(명종)에게 왕위를 전위하니, 경들은 더욱 힘써 그를 도와서 과인의 뜻에 부응토록 하라. 내가 죽거든 장례는 검소하게 하여 백성들의 짐을 덜 도록하라!"
참으로 인자하고 너그러운 왕이다. 훌륭한 왕과 왕비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도 한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