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1일 목요일

명필名筆

■ 명필名筆

■ 명필(名筆)

우리 조상들은 글씨 모양으로 그 사람의 재능과 성격, 품격을 판단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관리를 뽑을 때에도 지원자의 행동거지와 말투, 그리고 글씨를 보았다. 명필(名筆)로 이름을 떨쳤던 대표적 인물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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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은 711년에 태어난 통일신라시대의 인물로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쓴 것으로 유명했다. 평생 서예에만 몰두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글씨체를 두루두루 잘 써 후세의 사람들은 김생을 해동의 서성(書聖)이라 부르며 그가 쓴 글씨를 보물처럼 여겼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김생의 글씨에 얽힌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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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 때 홍관이라는 고려 관리가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의 일이다. 홍관을 찾아온 송나라 관리들에게 홍관이 김생의 글씨를 보여주자 "오늘 이곳에서 명필 왕희지(진(晉)나라 인물로 중국 최고의 명필)의 글씨를 보게 될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에 홍관이 "이건 왕희지가 쓴 글씨가 아니라 옛 신라 사람인 김생이 쓴 것"이라고 대꾸하자 송나라 관리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김생의 글씨는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고, 고려를 찾는 중국 사신들은 김생이 쓴 글씨를 사정사정해서 얻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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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김생처럼 왕희지에 견줄 만한 명필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었다. 한석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한호이다. ‘석봉’은 한호를 편하게 부르는 그의 호(號)이다. 조선 선조 때 인물인 한호는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글쓰기 공부를 했다. 한호도 김생처럼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뛰어난 명필로 인정을 받았는데, 한호가 당시 조선의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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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가 쓴 외교문서를 본 중국 관리들은 한호의 글씨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명나라의 유명한 학자 왕세정은 한호의 글씨를 보고 "성난 사자가 돌을 헤치는 것 같고, 목마른 말이 물가로 달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고, 명나라의 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주지번도 "한호의 글씨는 왕희지와 다툴 만하다"며 칭찬했다. 선조도 한호의 글씨를 아주 좋아하여, 한호에게 천자문을 책으로 쓰게 한 뒤 전국에 배포해 글씨를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한호의 글씨를 따라 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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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대의 명필인 김생과 한호는 당연히 한글이 아닌 한자를 잘 쓰는 명필이었다. 한글을 잘 쓰기로 이름난 한글 명필은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를 모신 서사(書士)상궁 이담월이다. 당시 조선 궁궐에서는 사대부들이 잘 쓰지 않는 한글을 권장하기 위해 왕이 내린 명령이나 왕실의 편지 등을 한글로 옮겨 쓰도록 했는데, 서사상궁은 왕비나 공주를 대신해 한글로 편지나 글을 쓰는 일을 맡은 상궁이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 무렵, 궁체라는 새로운 한글 글씨체가 만들어졌는데, 서사상궁들은 이 궁체로 아름다운 한글 글씨를 남겼다. 이담월은 신정왕후를 대신해서 여러 장의 편지를 적었는데, 이 편지에 남은 이담월의 글씨를 본 후세 사람들이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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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