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xa0

여름 하(夊/7) 화로 로(火/16) 겨울 동(冫/3) 부채 선(戶/6)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 가장 값지다.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는데 햇볕만큼 값진 것이 없다며 이것을 임금께 드리려는 농부의 獻曝之忱(헌폭지침, 忱은 정성 침) 선물이라도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이 담겼더라도 격이나 때에 맞춘 것이 아니면 도무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농부의 햇볕 선물을 땀 흘리는 여름에 줬다면 주고도 벌 받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철에 화로(夏爐)를 내놓거나 겨울철에 부채(冬扇)를 선물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필요할 때는 환영받다가 불편해지면 천대받는 사물, 또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나 재주를 비유하는 성어가 됐다. 冬扇夏爐(동선하로), 秋風團扇(추풍단선), 秋扇(추선)이라 해도 같은 뜻이다.

後漢(후한) 초기의 사상가이자 학자인 王充(왕충, 27~97)은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 언론자유를 내세워 속된 신앙, 유교적 권위를 비판해 중국사상사에서 지위가 우뚝하다. 대표적 저서인 ‘論衡(논형)’은 당시의 전통적인 학문과 정치를 비판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逢遇(봉우)편의 내용을 보자.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의 운명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질고 총명한 사람은 중용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의 잘못이라 주장한다. ‘이로울 것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올리고 겨울에 부채를 바치는 것과 같다(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以夏進爐 以冬秦扇/ 작무익지능 납무보지설 이하진로 이동진선).’

이것은 군주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니 화를 입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했다. 그런데 군주와 신하가 연이 닿지 않으면 유익한 진언을 해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반대로 부덕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도 축축한 것을 말릴 수 있고 겨울철 부채도 불씨를 일으킬 수 있으니, 빛을 받지 못해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각박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이야기의 전제다. / 글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