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금의야행錦衣夜行 - 비단옷 입고 밤길을 가다, 고생하고서도 보람을 찾지 못하다.

금의야행錦衣夜行 - 비단옷 입고 밤길을 가다, 고생하고서도 보람을 찾지 못하다.

금의야행(錦衣夜行) - 비단옷 입고 밤길을 가다, 고생하고서도 보람을 찾지 못하다.

비단 금(金/8) 옷 의(衣/0) 밤 야(夕/5) 다닐 행(行/0)

삼베와 무명으로 된 옷이 보통이던 때 명주실로 짠 비단으로 옷을 해 입으면 빛이 났다. 그래서 비단옷은 부귀와 출세한 사람들이 입는 옷으로 여겨져 錦衣還鄕(금의환향)이란 말이 나왔다. 고향은 누구나 그리는 곳인데 떵떵거리는 자리에 올랐다면 자랑하고 싶어 더욱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데 ‘비단옷 입고 밤길 가기’란 속담과 번역한 듯이 똑 같은 이 성어는 귀한 비단옷을 입고서 밤길을 걷는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허탕이다. 실컷 고생을 하고서도 보람이 없게 됐거나 생색이 나지 않게 됐을 때 이르는 말이다. 또 立身揚名(입신양명)한 뒤에도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을 가거나 또는 보람 없이 밤길을 걷게 되는 정반대의 상황 모두 力拔山(역발산)의 천하장사 項羽(항우)에게서 나왔다. 천하를 처음 통일한 秦始皇(진시황)이 죽은 후 각지서 호걸들이 난립할 때 명문 출신의 막강한 항우와 시골 읍장을 지낸 劉邦(유방)이 최후까지 겨뤘다.

關中(관중)을 먼저 차지한 유방은 항우가 대군으로 포위하자 뒤를 기약하며 철수하고 말았다. 민심을 다스린 유방에 비해 항우는 궁전의 금품을 약탈하고 호화 궁전 阿房宮(아방궁)을 불태웠다. 이제 천하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항우는 보화와 미녀들을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史記(사기)’의 항우본기와 ‘漢書(한서)’의 項籍(항적)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실컷 고생하고 통일을 눈앞에 두고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항우에게 韓生(한생)이란 선비가 관중에 도읍을 정해야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고 간했다.

항우가 말했다.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鄕 如衣錦夜行/ 부귀불귀고향 여의금야행).’ 한생이 항우를 가리켜 원숭이에 관을 씌워 놓은 沐猴而冠(목후이관)과 같다고 중얼거렸다가 가마솥에 삶겨 죽은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능력은 있으나 속이 좁은 항우는 천하보다 고향에서 더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슷한 뜻이지만 衣繡夜行(의수야행)으로 나온 곳은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서다. 前漢(전한)의 대기만성 정치가 朱買臣(주매신)에게 武帝(무제)가 말한다. ‘부귀해져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네(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부귀불귀고향 여의수야행).’ 비단옷입고 밤길을 가더라도 중앙에서 출세를 한 뒤 고향에서 뜻 깊은 일을 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문제는 지역의 대표자로 고향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모두에게 공언한 뒤 선출된 뒤에는 언제 봤냐는 위인들이다.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공약도 예사로 하는 이런 사람을 뽑는 유권자도 문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