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7일 일요일

종묘宗廟

■ 종묘宗廟

■ 종묘(宗廟)

성리학적 예학禮學)정치를 이상(理想)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오례(五禮)가 있었다. 오례 중에서 국가의 제사는 길례(吉禮)에 속했으며, 사직과 종묘는 길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제사 즉 대사(大祀)였다. 사직과 종묘의 제사는 조선이 농업을 주신으로 하고 전주 이씨(李氏)를 왕실로 한 국가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행사였다. "종묘사직"이라 함은 바로 국가와 왕실을 말하는 것이다. 국왕은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하는 경우에도 종묘와 사직의 신주(神主)는 반드시 모시고 가서 제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왜나 하면 제사가 끊어졌다는 것은 바로 국가가 멸망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현재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해 있다. 종묘의 건물은 본묘(本廟)인 정전(正殿)과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으로 구분된다. 정전은 현(現) 국왕으로부터 위로 4대까지의 조상과 국가를 창업하거나 중흥시킨 공적이 있는 국왕들의 신주를 모셨고, 영녕전은 본묘에서 옮겨진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에 개경에 있던 고려의 종묘에 조선의 종묘를 세웠다가, 1309년 서울로 도읍을 옮기면서 현재(사직동)의 자리에 종묘를 건설하였다. 태조가 서울에 도성을 건설하면서 종묘와 사직을 궁궐과 함께 제일 먼저 건설한 것은 종묘와 사직이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 준다.

국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국장을 치르고, 국장이 끝나면 가신주(假神主)를 만들어 혼전(魂殿)에 모셨다. 1년이 지나면 가신주를 묻고 새 신주를 만들어 혼전에 모시며, 삼년상이 끝나면 길일을 골라 혼전에 모신 새 신주를 꺼내 본전인 정전에 모신다. 정전의 신주는 4대(4代)가 내려갈 때까지 모셔지며, 4대가 지나면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진다. 정전에 있는 신주를 꺼내서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을 조천(祧遷)이라고 하는데, 생전에 국가를 위해 많은 공적을 남긴 국왕은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영녕전으로 옮기지 않고 정전에 그대로 두었다.

이후 종묘에 후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가 계속 추가됨에 따라 본묘와 별묘의 건물도 계속 증축 되었다, 왜냐하면 본묘에는 4대가 지나도 신주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는 불천위가 늘어났고, 별묘에는 본묘에서 나온 신주들이 계속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종묘에 있는 건물은 모두 옆으로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