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집 가(宀/7) 노루 장(犭/11) 부을 주(氵/5) 글 서(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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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나 재물을 주고 벼슬을 사는 賣官賣職(매관매직)은 다양한 말이 남아있는 만큼 예부터 성했던 모양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錢可通神(전가통신)이라 했으니 ‘개도 멍僉知(첨지)’라며 누구나 벼슬을 사고팔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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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포도주 한 섬을 보내 지방관 벼슬을 땄다는 一斛凉州(일곡양주, 斛은 휘 곡)나 빚을 내어 장수가 되고 시장판이 된 관아라는 債帥市曹(채수시조)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선 큰 재물이 아니라도 특산 기호품으로 벼슬을 따낸 예화가 많다. 조선 중기 더덕을 바쳐 沙蔘宰相(사삼재상)으로 불린 韓孝純(한효순)이나 희귀한 채소를 상납한 雜菜判書(잡채판서)의 李冲(이충)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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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개고기 요리를 권력자에 입맛에 맞게 한 덕에 벼락출세한 中宗(중종) 때의 李彭壽(이팽수)가 더해진다. 왕실과 민간 모두 널리 먹었다는 개장국은 집에서 기르는 노루(家獐)라 했는데 임금의 사돈인 권신 金安老(김안로)가 무척 즐겼다. 어릴 때 같은 동네서 자란 이팽수가 국가제사 관장의 奉常寺(봉상시)에 말단으로 있으면서 맛좋은 개고기 요리를 자주 상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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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이팽수의 개고기 요리를 일품이라며 칭찬하던 김안로가 어느 때 그를 임금 비서실인 承政院(승정원)의 注書(주서)라는 정7품으로 발탁했다. 주위의 추천도 없었는데 벼락출세하자 면전에서 반대는 못하고 사신이 말한 것이 ‘中宗實錄(중종실록)’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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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팽수가 개고기를 좋아한 김안로에게 크고 살진 개를 골라 구미를 맞췄으므로 매번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다며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청반에 올랐으므로(一日忽置淸班/ 일일홀치청반)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개고기 주서라고 불렀다(時人謂之家獐注書/ 시인위지가장주서).’ 淸班(청반)은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앞날이 보장되는 벼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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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따르는 이야기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팽수의 출세를 보고 역시 봉상시의 陳復昌(진복창)이 매일같이 김안로에게 개고기 구이를 갖다 바쳤고 개 요리는 자신이 제일이라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고관의 입맛에 안 맞았는지 벼슬은 오르지 않고 비웃음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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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면 죄를 없게도 하고 죽음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은 옳을 수가 없다. 예전의 벼슬자리는 專制(전제)의 절대자와 간신이 쥐락펴락했으니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은 어떨까. 공직이나 대기업 등은 公採(공채)가 확립돼 있으나 그렇지 않은 정무적인 자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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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적 충성에 좌우되는 현대판 獵官制(엽관제)는 낙하산 인사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다.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인사도 수시로 나타난다. 개고기 주사를 떳떳하게 욕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