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갱불화大羹不和 - 제사에 쓰는 국은 다른 양념을 섞지 않는다, 이것저것 넘보지 않고 검소하다.
대갱불화(大羹不和) - 제사에 쓰는 국은 다른 양념을 섞지 않는다, 이것저것 넘보지 않고 검소하다.
큰 대(大/0) 국 갱(羊/13) 아닐 불(一/3) 화할 화(口/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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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뜻하는 복잡한 글자 羹(갱)을 분해해 보면 새끼양 羔(고)에 아름다울 美(미)가 합쳐져 있다. 당연히 양고기가 들어간 맛좋은 국인 듯싶어도 보통 말하는 채소에 물을 부어 간을 맞춘 국이다. 도시락에 담은 밥과 한 그릇의 국을 말한 簞食豆羹(단사두갱, 簞은 소쿠리 단, 먹을 食은 밥 사)은 변변치 못한 음식의 가난한 살림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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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소박한 음식을 뜻하는 것으로 변했더라도 옛날 중국 상고시대에는 다른 맛을 첨가하지 않은 대례 때의 고깃국을 가리키며 검소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전해오는 제도와 문물, 의례의 해설 등을 망라한 ‘禮記(예기)’에서 비롯되어 곳곳에 인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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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올리는 제사에는 최고의 음식을 장만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평범하다. 樂記(악기)편에 실린 내용을 보자. ‘하늘에 제사지내는 대향의 제례에서는 맑은 물을 바치고 날고기를 도마 위에 올리며(大饗之禮 尚玄酒而俎腥魚/ 대향지례 상현주이조성어), 맑은 국에 양념을 치지 않는데 맛에 여운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大羹不和 有遺味者矣/ 대갱불화 유유미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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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酒(현주)는 제사 때 술 대신에 쓰는 맑은 찬물이다. 腥은 비릴 성. 귀한 재료로 최고의 솜씨를 발휘한 음식보다 자연에 가까운 것이 최고의 제수란 뜻이다. 예악에 강약이나 고저가 너무 심하면 격조에 맞지 않듯이 백성에게 극단의 好惡(호오)를 피하도록 가르쳐 이치와 의리를 실행하게 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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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呂氏春秋(여씨춘추)’의 適音(적음)편에서도 같은 구절을 쓰며 맑은 물과 산 물고기를 하늘에 올리는 것은 본질을 숭상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나라에선 조선 中宗(중종) 때의 학자 金安國(김안국)이 쓴 시에 이 말을 멋지게 활용한 것이 있다. 大東野乘(대동야승)과 芝峰類說(지봉유설) 등 여러 곳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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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갱은 원래 매실과 소금으로 조미하지 않고(大羹元不和梅鹽/ 대갱원불화매염), 지극히 묘한 이치는 뾰족한 붓과 혀로는 형용하기 어렵네(至妙難形筆舌尖/ 지묘난형필설첨), 고요한 가운데 잠자코 소장하는 이치를 관찰하니(靜裏黙觀消長理/ 정리묵관소장리), 달이 거울처럼 둥글다가 또 낫처럼 굽기도 하네(月圓如鏡又如鎌/ 월원여경우여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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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문신 牧隱(목은) 李穡(이색)도 음식과 관련된 예의범절 食禮(식례)의 기원은 맑은 국에서 비롯됐다고 食禮之起由大羹(식례지기유대갱)이란 말을 남겼다. 매실과 소금 등 다른 양념으로 조미하지 않은 맑은 고기만의 국을 제사음식의 으뜸으로 친 것은 옛 가르침대로 극단을 피한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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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맞는 음식만 찾고 배가 부르도록 먹는 욕심만 채우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아는 검소함을 일깨운다.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백 섬을 채우려 남의 한 섬도 빼앗으려는 乞神(걸신)들은 귓등으로 흘려듣겠지만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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