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여우 호(犭/5) 묻을 매(土/7) 여우 호(犭/5) 팔 골(扌/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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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영리하고 꾀가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성어로 나타나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힘이 없으면서도 배경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狐假虎威(호가호위)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군림하는 여우다. 관의 위세를 이용한 교활한 무리는 城狐社鼠(성호사서)다.\xa0서양에서도 여우는 백발이 될지 모르나 결코 선량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교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여우는 의심의 대명사로 떠올린다.
남을 믿지 못하고 이것저것 재보다 좋은 기회를 날리는 狐疑不決(호의불결)이다. 이보다 더한 것이 여우는 자신이 물건을 묻고도(狐埋) 잘 있는지 남이 가져갔는지 자기가 파 본다(狐搰)는 이 성어다.\xa0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에 이웃한 吳越(오월) 두 나라는 吳越同舟(오월동주), 吳越之爭(오월지쟁)이란 말이 남았을 정도로 사이가 적대적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고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며 복수의 칼날을 벼루는 臥薪嘗膽(와신상담)도 오왕 夫差(부차)와 월왕 句踐(구천)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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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가 서로 일진일퇴하던 중 오왕 부차가 압도할 때에 일어난 일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구천은 월나라를 멸하려는 오나라 공격에 맞서 싸우려 하자 대부 文種(문종)이 아직 때가 아니니 화해 사절을 보내야 한다고 종용했다.\xa0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을 쓴 左丘明(좌구명)의 역사서 ‘國語(국어)’에 상세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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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이 문종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왕 부차에게 사절 諸稽郢(제계영, 郢은 초나라서울 영)을 보냈다. 찾아간 사신이 월나라는 작은 속국인데 대군을 보내 토벌하려 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며 봄가을에 공물을 보낼 터이니 제재를 거두어 달라고 부차에게 조아렸다. 그러면서 속담의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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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의심이 많아서 일단 묻었다가 다시 파본다고 했는데(狐埋之而狐搰之/ 호매지이호골지),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是以無成功/ 시이무성공).’ 오왕이 월나라를 속국으로 한다고 널리 알리고 난 뒤 다시 멸망시키려 한다면 사방의 제후들이 어찌 믿고 섬기겠느냐고 항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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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의심을 가졌던 부차의 후일 어떻게 됐을까. 사절의 예물과 사죄로 흐뭇해진 부차가 침략을 멈춘 사이 구천은 미녀 西施(서시)를 바치며 안심을 시키고 국력을 기른 뒤 되레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묻은 것을 다시 파내는 것은 여우의 불신이라 한 뒤 구천은 그것을 역이용한 것이다.\xa0
믿고 일을 맡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리저리 재어보는 것은 사전에 치밀히 해야지 못 미더워 도중에 의심하면 끝이 없다. 이면의 깊은 계략을 탐지하지 못한 부차는 자결로 끝을 맺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