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수요일

오릉중자於陵仲子 - 오릉에 살던 진중자의 결백, 지나친 청렴은 인륜을 벗어난다는 교훈

오릉중자於陵仲子 - 오릉에 살던 진중자의 결백, 지나친 청렴은 인륜을 벗어난다는 교훈

오릉중자(於陵仲子) - 오릉에 살던 진중자의 결백, 지나친 청렴은 인륜을 벗어난다는 교훈

어조사 어, 탄식할 오(方/4) 언덕 릉(阝/8) 버금 중(亻/4) 아들 자(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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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탐욕이 없는 것이 淸廉潔白(청렴결백)이다. 예부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덕목이었다. 많은 사람을 기리고 우러른 것도 그렇지 못한 더 많은 이를 가르치기 위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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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중국에선 하늘과 신과 나와 그대가 안다는 四知(사지)의 楊震(양진)이나 백성의 생활을 위해 아욱을 뽑고 베틀을 내다버린 拔葵去織(발규거직, 葵는 아욱 규)의 公儀休(공의휴)는 첫손에 꼽힌다. 우리나라서도 淸白吏(청백리)가 217명이나 나왔다. 그런데 정도가 지나쳐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陳仲子(진중자)엔 극찬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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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맹자)’의 滕文公(등문공) 하편에는 장수 출신의 匡章(광장)이 진실로 청렴한 선비가 진중자라며 예를 드는 것이 나온다. 그가 山東(산동)성 부근의 於陵(오릉)이란 곳에 살 때 사흘을 굶어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는데 우물가에 벌레 먹은 자두를 주워 먹고 기력을 찾았다고 했다. 어조사 於(어)는 지명일 때 ‘오’가 독음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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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청렴한 사람이 되려면 집에서 살고 곡식을 먹어서는 안 되며 마른 흙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진중자는 손수 짚신을 짜고 부인은 길쌈을 해서 곡식과 바꾸니 그렇지 않다고 광장이 반박하자 맹자는 설명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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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에서 대를 이어 벼슬을 한 집안의 진중자는 형이 벼슬을 하여 받는 봉록이 많아 의롭지 못하다고 그곳서 살지 않았다. 형에게 보내 온 거위를 어머니가 요리하자 모르고 먹은 그는 토해 버렸다. 맹자가 평한다. ‘어머니가 주는 것은 먹지 않으면서 아내가 주는 것은 먹었고(以母則不食 以妻則食之/ 이모즉불식 이처즉식지), 형의 집에서는 살지 않으면서 오릉에서는 살았다(以兄之室則弗居 以於陵則居之/ 이형지실즉불거 이오릉즉거지).’ 이것은 지조를 지키지 못한 것이 되고 아무리 고귀한 목표라 해도 인간의 기본을 벗어난 것이니 추구할 것이 못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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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宋(북송)의 학자 范祖禹(범조우)도 集註(집주)에서 같은 의미로 비판한다. 사람이 위대한 까닭은 인륜이 있기 때문인데, ‘중자는 형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서(仲子避兄離母/ 중자피형리모), 친척과 군신과 상하가 없다(無親戚君臣上下/ 무친척군신상하)’고 했다. 이는 인륜을 저버린 것인데 어찌 청렴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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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천재시인 김삿갓은 가난한 형편에 훌륭한 시도 돈 받고 팔았으니 ‘오릉땅 진중자의 지나친 청렴은 따르지 않으리(莫作於陵意太廉/ 막작오릉의태렴)’ 하며 ‘卽吟(즉음)‘에서 노래했다. 진중자의 도가 넘는 청렴은 물론 따를 수도 없지만 청렴이 무엇인지 모르는 공직자가 있어서는 더 안 되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