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싱크탱크Think Tank 1편
■ 조선의 싱크탱크(Think Tank) 1편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잘 조화를 이루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춘 유교적 이념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 만큼 왕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면서 왕을 보필하는 참모의 발탁과 활용은 국정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건국 초기 조선의 기반을 닦은 태조와 태종대의 정도전과 하륜,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한 세종대의 집현전 학사들, 전란의 위기 극복에 나선 유성룡과 명재상 이원익 등이 저마다 시대적 상황에 맞춰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한 대표적 싱크탱크(Think Tank)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세자 책봉에 반대했던 황희를 발탁해 명재상의 반열에 오르게 한 세종의 포용 리더십이나,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내면서 국방과 외교·경제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청백리 정승 이원익의 활약은 오늘날 정치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표상이다. 세종의 집현전이나 정조의 규장각처럼 인재 양성기관을 설치해 왕을 보필할 참모들을 체계적으로 배출시켜 국정을 수행한 점도 뛰어난 부분이다. 물론, 왕의 사리판단을 흐리게 해 결과적으로 국정농단의 주역이 되거나 희대의 간신으로 오명을 남긴 사람들도 많다.
고려 말 역성(易姓)혁명을 완성해서 조선 건국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정도전(1342~1398년)은 대표적인 킹메이커이자 참모(參謀)이다. 정도전은 취중(醉中)을 빙자해서 ‘한나라 고조(유방)가 장량(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고조를 이용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조선이라는 새 왕조 건설의 최고 주역임을 스스로 자부했다. 1388년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을 잡은 후 정도전은 이성계의 정치 참모로서 개혁과 혁명을 주도해나갔다. 과전법이라는 토지제도 개혁에 착수해 구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박탈하여 새 왕조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토지를 고르게 분배함으로써 새 왕조의 기반과 지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건국 후에는 한양 천도와 경복궁 조성, 종묘와 사직의 정비, 한양 도성(都城)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갔다. 또 <조선경국전>과 같은 법전을 저술함으로써 새 왕조의 기본 플랜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했다. 건국 이후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정작 조선에서의 그의 삶은 극히 짧았지만, 정도전이 제시한 새로운 국가 모델은 500년 조선왕조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특히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라는 민본(民本)사상 위에 토지제도·교육제도·과거제도 등을 통해 이를 실천해 나간 점은 오늘날의 정치에도 투영되어야 할 부분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