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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2일 금요일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1편

■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1편

■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1편

경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의왕후 심씨는 1686년 7월 11일(음력 5월 21일) 회현동(현 서울 회현동) 우사에서 태어났다. 심씨의 본관은 청송(靑松). 단의왕후 심씨의 가문 청송 심씨는 역대로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집안이었다. 세종의 국구(國舅:왕비의 아버지)인 심온의 12대손이고, 명종의 국구인 심강의 7대손이며, 동서분당의 원인을 제공한 심충겸의 6대손이다. 의금부도사 증영의정 심봉서(沈鳳瑞)의 손녀이며, 사옹원 첨정으로 후일 우의정, 영의정 등으로 추증된 익창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이다.

세자빈으로 책봉될 당시 증조부 심권(沈權:당시 종4품 부응교)이 생존한 상태로 심권은 서인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1696년에 11살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되어 경종과 가례를 올렸다.1696년(숙종 22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었다. 타고난 품성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덕을 갖추고 있었다. 어리지만 양전(兩殿: 임금의 궁전과 세자궁)과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 데 손색이 없었다.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을 때는 경종의 친어머니 장희빈이 중전 자리에서 후궁 자리로 밀려난 상태인데다가, 경종은 성격이 불같은 친어머니보다 성격이 온화한 인현왕후를 더 따르다보니, 세자빈 심씨는 처신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래도 경종보다 2살 많은 세자빈은 최대한 조심하며 두 시어머니 모두에게 맞춰주려 애썼다. 그런데 어린 남편과 두 어머니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래서 몸을 상해 병약했는지도 모른다.

흔히 병약한 왕세자(경종)를 곁에서 극진히 모시다가 급환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숙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왕세자는 건강한 편이었고, 병약한 쪽은 세자빈 심씨였다. 숙환(宿患:묵은병)으로 풍질(風疾:중풍 등의 신경질환)을 앓았고, 1701년 9월에는 말이 횡설수설하는 증상이 있어 내의원에서 약을 의논하였다. 앞서 8월에는 몸이 아파 인현왕후의 상사(喪事)에 예를 갖추지 못했다. 가례(嘉禮) 당시에도 극심한 복통을 일으켜 식을 전부 취소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을 만큼 심각한 소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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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즉위 2년 전인 1718년 3월 8일(음력 2월 7일)(숙종 44년),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실록의 사망 기사를 보면 사망하던 날 유시(대략 오후 5시 ~ 저녁 7시 사이)에 쓰러졌고, 2경 1점(대략 밤 9시 반 무렵)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록에서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 갑자기 졸(猝)이라는 표현이나, 뜻하지 않은 상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앞서 말했듯이 원래부터 병약한 체질에 앓던 병들로 인해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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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후(王后)에 추봉되었다. 전호(殿號)는 영휘(永徽)라 하였으며, 1726년(영조 2년)에 공효정목(恭孝定穆)이라는 휘호(徽號:왕비가 죽은 뒤 시호와 함께 올리는 존호)가 추상되었다. 시호는 영휘공효정목단의왕후(永徽恭孝定穆端懿王后)이고, 능호는 혜릉(惠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