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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0일 토요일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2편

■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2편

■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2편

문종은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세자에 올라 무려 29년 동안을 세자로 보낸다. 세종대왕의 치세기간이 31년 6개월이나 되지만, 그 기간 중 문종이 세자로만 무려 29년을 보냈으니 세종의 치적은 문종과 공동으로 이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세종의 병치레가 아주 심했던 세종 후기는 솔직히 문종의 치세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종은 긴 세자시절 동안 특별한 건강 문제없이 과도한 업무를 모두 소화해냈다. 세자시절 문종은 병약함 보다는 세종과 비슷하게 일중독에 가깝게 일에 몰두했다. 문종은 세종대왕을 쏙 빼닮아 학문에 대한 깊이가 상당히 깊었다. 병서(兵書)와 다른 분야에서도 업적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글 창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장영실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측우기도 사실은 문종이 세자시절에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문종은 세종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왕이었지만 실제로는 국방에도 아주 관심이 많은 지도자였다. 실제로 세종시대 개발한 신기전과 화차, 화포 등 화약무기에 관해서는 문종이 기획 개발 설계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그리고 군제 개편 또한 관심이 많아서 4군 6진 개척 또한 세자시절 문종이 주도했다.

문종은 세자로서 보기 드물게 효자였고, 수양대군을 비롯한 동생들에게도 자신만만한 형이었다. 그래서 문종은 세자시절이나 왕이 되어서도 동생들을 전혀 견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때때로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낼 때가 있어, 중신들은 문종에게 왕권 강화를 위해서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견제하도록 요구하고 결단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종은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중신들의 요구를 다 무시했고, 문종 앞에서 철저하게 발톱을 숨긴 수양대군에게 오히려 어느 정도의 조정 일을 맡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어린 단종을 남겨 놓고 갑작스레 문종이 승하하자 문종 독살설도 나오게 되었다.

백성들이 세종 승하 때보다 문종 승하 때 더 슬퍼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시대에도 백성들이 문종의 치세를 잘 알았던 듯하다. 만일 문종이 조금 더 오랫동안 왕으로서 보위에 있었다면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현군이 탄생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자질을 가진 문종에게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 3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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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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