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종의 여인들, 선의왕후 1편
■ 경종의 여인들, 선의왕후 1편
1718년(숙종 44년) 세자 시절 경종의 첫 번 째 세자빈(世子嬪)인 심씨(沈氏:端懿王后)가 죽자, 어씨가 14세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31살 왕세자(경종)와 가례(嘉禮)를 올렸고, 1719년 9월에 관례(冠禮:아이가 어른이 되는 의식)를 올렸다. 세자빈 어씨는 영돈녕부사 어유구(魚有龜)의 딸로서, 1705년 12월 14일(음력 10월 29일)에 태어났다.
어유구는 노론 영수 김창집의 제자이며 일가가 모두 노론계이다. 소론계의 배후를 갖던 경종과는 정치 성향이 반대인 집안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은 것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장 이하번의 딸이다. 큰아버지 어유봉(魚有鳳)은 노론 김창협의 문인인데, 김창협은 김창집과 형제간이고, 이 둘은 어유봉의 처사촌이 된다.
큰아버지 어유봉의 사위가 홍상한(洪象漢)인데, 홍상한은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의 큰아버지 홍석보(洪錫輔)의 아들이다. 그녀가 세자빈에 간택될 당시 할아버지 어사형이 생존해 있었다. 어머니 전주이씨는 중종의 서자 영양군 함의 5대손으로, 증조부는 영양군의 양자 흥녕군 수전의 장남 풍해군 잠이고, 할아버지는 능산군 희이다.
1720년 숙종이 사망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경종의 초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왕비 추봉(追封)과 그녀의 왕비 책봉을 동시에 주청(奏請)한 것이 청나라에 트집 잡혀 1721년에야 왕비 책봉에 백관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경종 1년, 경종 부부에게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하여 노론 4대신(이이명,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과 왕대비(인원왕후)의 강력한 추진으로 연잉군(영조)의 왕세제 책봉이 결정되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갓 17세에 불과했다. 일설에 따르면 연잉군을 반대하여 종실과 비밀리에 연합하여 소현세자의 직손인 밀풍군 탄, 혹은 밀풍군의 아들인 관석을 입양하려 하였으나 경종의 급서(急逝)로 실패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1724년 경종이 사망하고 영조가 즉위하자 선의왕후는 불과 20세의 나이로 왕대비가 되었다. 영조 2년에 대비전이 있는 창덕궁이 아닌 경종이 세자 시절 거처하던 창경궁 저승전(儲承殿)에서 지냈으며, 선의왕후 어씨는 병약한 남편 경종의 병수발로 아까운 청춘을 다보내다가 1730년 8월 12일(음력 6월 29일)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후사도 없이 창경궁 어조당(魚藻堂)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거처하던 저승전은 후에 세자궁으로 개조되어 사도세자의 처소가 되었다. 저승전 건너편에 위치했던 취선당은 세자궁의 소주방으로 개조되었다. 소주방은 주방이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저 불길한 저승전에서 자라고, 취선당에서 지은 밥을 먹은 탓이라 하기도 하였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