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2편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2편
집현전에서는 주로 옛 제도에 대한 해석과 함께 현안의 정책 과제들을 연구하였다. 주택에 관한 옛 제도를 조사한다거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의 접대 방안, 염전법에 관한 연구, 외교문서의 작성, 조선의 약초 조사 등 다양한 연구와 편찬 활동이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집현전에 소속된 학자들은 왕을 교육하는 경연관, 왕세자를 교육하는 서연관, 과거시험의 시관(試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임무도 동시에 부여받았다. 그야말로 국가의 싱크탱크(Think Tank)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집현전에서는 각종 편찬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역사서, 유교 경서, 의례, 병서, 법률, 천문학 등 국가에 필요한 서적 편찬의 과제가 집현전에 부여되면 학자들은 과거의 법제와 학문 연구를 통해 이를 완수해 세종에게 올렸다. 이러한 편찬사업은 세종 당대에 완성된 것도 많았지만 ‘고려사’와 같이 전대의 역사를 정리한 편찬사업은 세종대에 시작하여 문종대에 완성되었다. 그만큼 긴 안목을 가지고 과제를 부여하고 이를 완성했던 것이다. 집현전은 세종의 지대한 관심 속에 국가의 중요 정책을 연구하고 결정하였다. 세종 또한 수시로 이곳을 방문하여 학자들을 격려하였다. 어느 겨울 밤 집현전에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본 세종이 이곳에서 깜빡 잠이든 신숙주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담비 가죽 옷을 덮어준 일화는 널리 알려진 미담(美談)이다.
그러나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결정으로 오랜 기간 이곳에 근무하게 했기 때문에 승진이 늦어져 학자들 간에는 불만이 쌓였고 다른 부서로 옮기려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정창손은 22년, 최만리가 18년, 박팽년이 15년, 신숙주가 10년을 근무하는 등 집현전 근무 연한은 다른 어떤 부서보다도 길었고, 이에 따라 승진에 불만을 가지는 학자들이 일부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을 제도적으로 배려하는 조치도 취하였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위해 사가독서(賜暇讀書), 즉 왕이 하사하는 유급 휴가제도를 실시하였다. 심신이 지친 학자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준 것으로, 오늘날 대학교 교수의 연구년(또는 안식년) 제도와 비슷하다. 역시 시대를 초월한 성군(聖君)임에 틀림없다.
사가독서(賜暇讀書)는 세종 8년인 1426년 12월에 집현전 학사 권채, 신석견, 남수문 등을 집에 보내 3개월간 독서하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집으로 보내 쉬게 했다가, 이후에는 학문하기 좋은 조용한 절(진관사)에 보냈다가, 성종대에 이르면 아예 독서당(호당이라고도 칭함)을 만들어 사가독서 제도를 정착시켰다. 처음에 독서당은 용산에 있어 남호(南湖)라 하였다가 중종대인 1507년 현재의 서울 금호동 산자락으로 옮긴 후에는 동호(東湖)라 하였다. 지금 서울 성동구의 독서당길이나 한강의 다리 중 동호대교는 조선시대에 동호 독서당이 있었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