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1편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1편
충선왕은 원 세조 쿠빌라이의 외손(外孫)으로 충렬왕의 셋째 아들이다. 어릴 때 이름은 왕원이고 몽고 이름은 익지례보화(益智禮普化, 젊은 황소라는 뜻)이다. 원래 셋째 아들은 왕위와는 거리가 멀지만, 충선왕의 어머니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쿠빌라이의 막내딸이었기에 세자가 될 수 있었다. 제국대장공주는 혈통 상 ‘황금씨족’이라고 불린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파워가 있었다.
왕원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고려사》에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총명하고 마음씀이 남달랐던 세자는 백성들의 삶이 곤궁함에도 날마다 사냥을 즐기는 부왕(父王)을 울며 말리기도 하였고, 땔나무를 지고 궁으로 들어온 자의 의복이 남루함을 보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였다. 왕권을 대행할 때에는 세력가들에게 땅을 빼앗겨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토지를 되돌려주기도 하였다. 원의 세조 쿠빌라이도 외손자의 영특함을에 기뻐하며 늘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1277년(충렬왕3년) 3살 때 세자로 책봉되고, 다음 해 원나라에 가서 몽고식 이름을 받았다. 18살 때 왕원은 왕영·홍문계(洪文系)·조인규(趙仁規) 등의 딸을 비(妃)로 맞아들였다. 특히 왕영의 딸 정비(正妃) 왕씨는 1287년(충렬왕13년)에 공녀로 선발되었는데, 사정을 들은 세자의 요청으로 공녀 차출을 면하게 되었고 자신의 비(妃)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4년 후인 22살 때(충렬왕22년)에 연경(북경)의 황궁에서 원나라 쿠빌라이의 증손녀이자, 진왕(晉王) 감마라(甘麻剌)의 딸인 계국대장공주(國大長公主, 몽골명 寶塔實憐보탑실련)와 혼인했다.
1297년(충렬왕23년) 제국대장공주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39세였다. 부고를 받은 세자 왕원은 그해 6월 원나라로부터 돌아와 모후의 영전에 분향했다. 제국대장공주가 죽자 충렬왕은 원나라에서 입지가 약해졌고, 대신 새로 원나라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세자 왕원이 고려의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했다.
세자 왕원의 편에 붙은 대신들은 하나같이 충렬왕이 총애하던 궁인 무비(無比:백야단)를 모함했다. 세자 왕원은 궁인 무비와 그 측근을 체포하여 ‘무당을 시켜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하여 죽게 한 사실’을 자백하게 한 후 처형했다. 또한 충렬왕의 심복인 내시 도성기, 최세연, 전숙, 방종저, 중랑장 김근을 죽인 뒤에 부왕의 측근 40여 명을 숙청하고 조정을 장악했다.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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