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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5일 금요일

현시혹청眩視惑聽 - 보는 것을 흐릿하게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하다,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

현시혹청眩視惑聽 - 보는 것을 흐릿하게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하다,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다.

현시혹청(眩視惑聽) - 보는 것을 흐릿하게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하다,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다.

어지러울 현(目/5) 볼 시(見/5) 미혹할 혹(心/8) 들을 청(耳/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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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눈을 가려 어린애를 속인다고 해도 천진한 애가 넘어갈 리가 없다. 掩耳偸鈴(엄이투령) 성어와 같은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하기’란 것도 있다. 제 귀만 막으면 다른 사람도 듣지 못하는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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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는 뜻으로 쓴다. 하지만 어린애에게도 통하지 않는 이런 일이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힘을 쓰는 세계에서 자주 일어나 어지럽게 한 일이 많았다. 보는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眩視)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한다(惑聽)는 말은 상대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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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네 글자로 풀어 쓴 성어는 중국 淸(청)나라의 혁명 운동가이자 국학자로 이름난 章炳麟(장병린, 1869~1936)의 ‘正名雜義(정명잡의)’란 글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나오니 의외로 역사가 짧다. 하지만 어지럽거나 아찔하다는 뜻의 眩(현)은 오래된 유교 경전 中庸(중용)에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는다(敬大臣則不眩/ 경대신즉불현)’라는 구절부터 사용돼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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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로 줄인 眩惑(현혹)은 정신을 빼앗겨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거나 그렇게 되게 하는 행위로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우리나라의 고전 시문집이나 實錄(실록)에도 수두룩하게 검색되는데 몇 가지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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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세종)때 요승 信眉(신미)는 스스로 生佛(생불)이라며 ‘겉으로는 선을 닦는 방법을 하는 체 하고, 속으로 붙여 사는 꾀를 품어서(陽爲修善之方 陰懷寄生之謀/ 양위수선지방 음회기생지모), 인심을 현혹(其眩惑人心/ 기현혹인심)’시켰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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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宗(중종) 때의 문신 李彦迪(이언적, 迪은 나아갈 적)은 조정에 봉황과 꿩조차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려 ‘군주 마음 이로 인해 현혹된다(君心以之而眩惑/ 군심이지이현혹)’고 한탄했다. 임금의 눈과 귀를 가려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제 욕심만 채운 간신배들은 시대마다 있었고, 몰랐거나 막지 못한 어리석음도 昏君(혼군)이라 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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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이름을 떨친 중국 간신은 趙高(조고)나 梁冀(양기), 李林甫(이임보), 秦檜(진회) 등 수두룩하다. 우리나라도 왕이나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려 나라를 어지럽힌 사람이 적지 않다. 고려 말의 辛旽(신돈, 旽은 밝을 돈)이나 조선 초기 柳子光(유자광), 韓明澮(한명회, 澮는 봇도랑 회) 등은 왕의 신임을 업고 권세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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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인)의 장막’을 둘러 눈귀를 가리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21세기의 민주국가에서도 이어져 최순실이 비선으로 농단할 때는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문고리 권력이 배타적으로 암약하는 것은 어느 때라도 없을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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