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날 때
우리는 태어날 때
아주 특별한 세 가지 재능을 부여받았다.
생명, 사랑 그리고 웃음이 그것이다.
이런 소중한 재능들을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배운다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 역시 기꺼이
우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줄 것이다.
"-어니J 젤린스키 느리게 사는 즐거움 중-
"
우리는 태어날 때
아주 특별한 세 가지 재능을 부여받았다.
생명, 사랑 그리고 웃음이 그것이다.
이런 소중한 재능들을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배운다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 역시 기꺼이
우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줄 것이다.
"-어니J 젤린스키 느리게 사는 즐거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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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얼마 전 숙취로 속이 쓰려 순대국 집에서 순대국 한 그릇을 기다리고 있는데,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 느릿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 임을 짐작 할수 있었지요.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주인 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 쳤습니다.
"이봐요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어....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근데 얘야 이리 좀 와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습니다.
"미안 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든 아이는 주인 아저씨의 말이 낯빛이 금방 시무룩 해 졌습니다.
"아저씨 빨리 먹고 나갈께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 이에요...."
아이는 찬 손바닥에 꽉 쥐어져 눅눅해진 천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잠시후 주인 아저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그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 보았습니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께"
아이는 그렇게 말 하고는 소금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 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모두 떠서 앞 못보는 아빠의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떠. 내가 김치 올려줄께"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 아저씨는 조금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쓴 그 자리에 있던 손님은 그 아이와 아버지의 음식값을 같이 지불하고 식당을 나왔답니다.
-Facebook 글 옮김-
생각나는 얼굴이 되고 싶습니다
슬프도록 좋은 날이면
생각나는 얼굴이 되고 싶습니다.
볼만한 연극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함께 가서 보고 싶은 사람으로
좋은 음악실의 개업화환 앞에서
공중전화를 하여 불러 낼 수 있는
그런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늦은 비가 땅을 파고 있는 새벽에도
선뜻 다이얼을 돌릴 수 있는
전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무얼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아는 이에게 기억되기 보다는
무던하고 포근한 솜이불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같이 다니면 앞서거나
뒤로 쳐지지 않는 보폭을 갖고
누구에게나 어울릴 수 있는
무난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행복한 중년’ 중-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재산과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이 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글렌 반 에케렌 ‘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
이런 사람이 연애를 잘한다고 해요.
사과를 잘 쪼개는 사람.
사탕을 끝까지 녹여먹는 사람.
유리창을 닦아본 사람.
찬밥도 맛있게 먹는 사람.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
그러니까 연애를 잘 하는 조건은 이렇게 정리가 되지요.
사과를 쪼갤 수 있다는 건, 서로 나눌 줄 안다는 것. 사탕을 녹여먹는다는 건, 기다릴 줄 안다는 것. 유리창을 닦는다는 건, 정성을 들이는 것. 찬밥도 맛있게 먹는다는 건, 사랑이 초라해도 맛있게 소화한다는 것.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딘다는 건,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 욕심으로 상대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
"-송정림, 사랑하는 이의 부탁 중-
"
어떤 야심찬 젊은이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그 젊은이는 누군가 주문을 받으로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가 영문을 몰라하자 어느 친절한 손님이 젊은이에게 카페테리아의 운영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쟁반을 들고 저 줄을 따라 가면서 먹을 음식을 담은 후에 줄의 끝에 도착하면 음식값이 얼마인지 말해줄 걸세."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젊은이는 미국에 처음 오던날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하던 그날의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카페테리아와 같은 것이란다. 값을 지불할 마음만 있으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지. 성공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누군가 성공을 가져다 주길 마냥 기다리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단다. 누구든 직접 나서서 성공을 쟁취해야 하는 거야."
-BAND 글 옮김-
엄마는 어린 딸을 고아원에 보냈다. 딸은 오랜 세월 동안 엄마를 원망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버린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딸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앞을 못 보는 딸인 자신을 보기 싫어 버렸다는 생각에 평생 짓눌려 살았다.
세월이 흘러 어린 딸은 숙녀가 되었고, 젊었던 엄마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녀는 만났다. 딸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고 절규를 했지만.. 엄마는 그 딸의 모든 모습을.. 아주 작은 것까지도 보고 싶었다. 느끼고 싶었다.
"어디 보자. 내 딸아!" 하면서 더듬더듬 딸의 얼굴을 만지는 엄마의 손을 느끼면서.. 딸은 그 때서야 깨달았다. "엄마도 앞을 못 보는 거야?"
앞을 못 본 엄마는 남편을 잃고, 어린 딸을 키울 수 없었다. 그 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 맡긴 것이다. 아마도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딸은 그 세월 동안 엄마를 원망했지만 엄마는 그 긴 세월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샌 것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 후에야 용서를 할 수 있는가? 그냥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인가?
보고, 느끼고, 입증되어야만 믿을 수 있는가? 그냥 믿을 수는 없는 것인가?
-BAND 글 옮김-
눈 덮인 히말리야 산맥의 산골 마을에 낯선 아가씨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아리따운 아가씨의 눈망울엔 근심이 가득 서려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마을 어귀의 강가로 가더니 오래도록 흐르는 물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아가씨는 그 마을에 머물렀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양을 치러 나가던 어린 목동이 강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아가씨는 마치 무엇을 기다리는 듯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목동이 양을 몰고 나타났을 때에도 아가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씩 그녀의 곁을 스쳐갔습니다. 아가씨의 머리에도 어느덧 하얀 세월의 눈이 내렸고, 얼굴에는 주름이 잡혀갔습니다.
어느덧 할머니가 된 아가씨는 그때까지의 변함없이 그 강가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강물의 위쪽에서 무언가 둥실둥실 떠내려왔습니다. 놀랍게도 한 젊은이의 시체였습니다.
할머니가 된 아가씨는 벌떡 일어나 강 위쪽으로 뛰어가 그 젊은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녀의 입가에는 오랜만에 엷은 미소가 감돌았고, 그녀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습니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이 청년은 제 약혼자랍니다. 수십 년 전 히말리야에 올라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지요. 저는 지금까지 이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히말리야 산맥 어디쯤에서 눈 속에 파묻힌 약혼자가 눈이 조금씩 녹으면서 강가로 흘러내려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가 되어 버린 그녀는 떠날 때 모습 그대로인 청년을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중-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가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비탄에 잠겼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제발 아들을 5분만 만나게 해주세요. 단 5분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천사가 말했다.
‘아들을 5분동안 만나게 해주겠다 그러면 아들의 언제 모습을 보고 싶으냐? 어머니의 품에서 재롱을 피우던 시간인가?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인가?’
어머니는 한 참을 생각한뒤 천사에게 말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 제게 용서을 빌던 모습입니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제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슬픔으로 가슴이 미워 집니다."
어머니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자녀에게 많은 사랑을 주면서도 더 못해준 것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어머니는 지우개가 되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모두 지워주고 싶은 것입니다.
-Facebook 글 편집-
한 의사가 응급수술을 위한 긴급전화를 받고 병원에 급히 들어와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사는 병원 복도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년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의사를 보자마자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오는데 하루 종일 걸리나요? 당신은 내 아들의 생명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나요? 의사로서 어떤 책임 의식도 없나?”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달랬다.
“죄송합니다. 제가 외부에 있어서 전화 받자마자 달려 왔습니다. 수술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아버님..”
“진정하라고? 만약 당신의 아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거야??”
소년의 아버지는 매우 화내며 말했다. 의사는 다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분명 신의 가호가 있을 겁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편안히 말하는고만”
몇 시간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다행히 수술 잘되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간호사에게 물어보세요” 라며 소년의 아버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의사는 달려 나갔다.
“저 의사는 왜 이렇게 거만한가요? 내 아들의 상태를 묻기 위해 몇 분도 기다릴 수 없는건지.. 참..”
수술실에서 나온 간호사에게 말했다. 간호사는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보이며..
“의사 선생님의 아들이 어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례 중 수술 전화를 받고 급히 들어온 겁니다. 아드님의 목숨을 살리고 장례를 마무리 하려고 가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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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마세요.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는지 쉽게 알수 없으니깐..
-인터넷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