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송양지인ㅣ宋襄之仁

송양지인ㅣ宋襄之仁

송양지인ㅣ宋襄之仁

○ 송나라 양공의 인정

○ 宋(송나라 송) 襄(도울 양) 之(갈 지) 仁(어질 인)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어짊」이라는 뜻으로,쓸데없이 베푸는 인정(人情)을 이르는 말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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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 제,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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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하남성 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월녀제희ㅣ越女齊姬

월녀제희ㅣ越女齊姬

월녀제희ㅣ越女齊姬

○ 월나라와 제나라의 미인, 미인이 많이 나는 고장

○ 越(넘을 월) 女(여자 녀) 齊(가지런할 제) 姬(여자 희)

중국 4대 미인을 나타내는 沈魚落雁(침어낙안)과 閉月羞花(폐월수화) 말고도 시원스런 눈동자와 하얀 이 明眸皓齒(명모호치, 眸는 눈동자 모), 버들잎 눈썹과 복숭아꽃 얼굴 柳眉桃顔(유미도안) 등 부지기수다. 또 전 세계 미인대회를 휩쓰는 나라 베네수엘라와 같이 미인이 특별히 많은 나라가 예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부터 揚子江(양자강) 이남의 越(월)나라와 그 서쪽의 吳(오)나라, 그리고 黃河(황하) 남쪽의 齊(제)나라가 대표적인 미인의 나라였단다. 그래서 吳姬越女(오희월녀) 또는 越女齊姬(월녀제희)라는 성어가 남았다.

前漢(전한) 초기의 문인 枚乘(매승)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 높아 산문과 운문의 중간 형식인 ‘七發(칠발)’이란 작품을 남겼다. 여기에서 누구나 다 갖고 싶어 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 하며 미인에 대해 조심할 것도 든다. 중간 부분에 ‘흰 이와 고운 눈썹의 여인은 목숨을 찍는 도끼이고,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은 창자를 썩게 하는 약(皓齒蛾眉 命曰伐性之斧 甘脆肥膿 命曰腐腸之藥/ 호치아미 명왈벌성지부 감취비농 명왈부장지약)’이라며 이어진다. ‘월녀는 앞에서 시중들고 제희는 뒤에서 받들게 하여 쾌락에 빠지면(越女侍前 齊姬奉後往來游讌/ 월녀시전 제희봉후왕래유연)’ 독약을 마시고 맹수의 어금니와 희롱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노마십가ㅣ駑馬十駕

노마십가ㅣ駑馬十駕

노마십가ㅣ駑馬十駕

○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다

○ 駑(둔한 말 노) 馬(말 마) 十(열 십) 駕(멍에 가)

둔한 말도 열흘 동안 수레를 끌 수 있다는 뜻으로,재주 없는 사람도 노력(努力)하고 태만(怠慢)하지 않으면 재주 있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비유

荀子(순자)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趙(조)나라 사람으로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해 孟子(맹자)를 비판했다. 그의 사상을 모은 ‘순자’는 여러 번 정리를 거쳐 32편으로 되어 있다. 둔한 말의 사례는 몇 곳에 나오는데 먼저 가장 처음의 勸學(권학)편의 내용을 보자.

‘흙이 쌓여 산이 이루어지면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게 되면 교룡이 생겨난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천리마라도 한 번에 열 걸음을 뛸 수는 없으며, 야위고 둔한 말이라도 열흘 동안 달릴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에 나오는 修身(수신)편의 부분도 비슷하다. ‘무릇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거뜬히 달리지만, 비루먹은 말일지라도 열흘 동안 달려간다면 역시 이에 미칠 수 있다’ 배움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의지와 실천이라고 순자는 강조했다.

속수지례ㅣ束脩之禮

속수지례ㅣ束脩之禮

속수지례ㅣ束脩之禮

○ 묶은 육포의 예절이라는 말

○ 束(묶을 속) 脩(육포 수) 之(어조사 지) 禮(예 례)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속수(束脩)를 행한 자에서부터 그 이상은 내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속(束)’은 다발로 열 개를 말하며,‘수(脩)’는 말린 고기 포를 뜻한다.

이 속수는 예물 가운데서 가장 약소한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는 반드시 선물을 갖고 갔는데, 그것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공자는 돈을 벌기 위해 제자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공자는 모든 가르침은 예(禮)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가 제자들에게 속수 이상의 예물을 가지고 오도록 한 것은 제자의 예를 지키도록 한 것이다.

공자가 천명을 깨닫고 이 세상을 구제하려 하였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고 사회를 인간 사회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예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예를 만들어 내어 인간 사회를 건설했던 주공(周公)을 모범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예의 형식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道)를 알아야 하고, 도를 확실히 알고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덕(德)을 밝혀야 하며, 덕을 밝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인(仁)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귀이천목ㅣ貴耳賤目

귀이천목ㅣ貴耳賤目

귀이천목ㅣ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 貴(귀할 귀) 耳(귀 이) 賤(천할 천) 目(눈 목)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이 잡은 일감이 더 헐어 보인다’는 속담대로다.

옛것은 귀하게 여기고 새 것은 하찮게 여긴다는 貴古賤今(귀고천금)과 같이 보면 복고주의적 성격이 강한 중국인들의 풍조를 꼬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 漢(한)나라 초기의 유학자 桓譚(환담, 기원전24~기원후56)의 ‘新論(신론)’에 잘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은 먼 곳의 소문만 중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서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면서 이어진다. ‘세상 사람들은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것을 비천하게 여기며, 귀로 들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긴다(世咸尊古卑今 貴所聞 賤所見/ 세함존고비금 귀소문 천소견).’

後漢(후한)의 문인 겸 과학자인 張衡(장형, 78~139)은 ‘東京賦(동경부)’에서 더 신랄하게 꾸짖는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후학들이 속뜻은 모르고 겉만 이어받아 전하며, 들은 것만 귀히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은 천하게 여긴다(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 소위말학부수 귀이이천목자야).’ 末學(말학)은 천박한 학문, 膚受(부수) 역시 피부에 받아들인 피상적인 학문이란 뜻. 잘 알지 못하는 이론이나 귀로만 전해들은 지식을 더 신뢰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맥구읍인ㅣ麥丘邑人

맥구읍인ㅣ麥丘邑人

맥구읍인ㅣ麥丘邑人

○ 맥구읍의 사람, 노인을 뜻한다.

○ 麥(보리 백) 丘(언덕 구) 邑(고을 읍) 人(사람 임)

제환공은 맥구로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그 읍에서 사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환공은 그 노인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당신은 어느 곳 사람이오?" "맥구읍 사람입니다." "나이는 몇이나 되었소?" "여든세 살입니다." "좋겠소. 장수를 하여...... 당신의 장수로써 과인을 위해 기도해 주시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께서 대단한 장수를 하게 하소서. 돈과 옥은 천한 것이고, 사람이 귀한 것입니다."

"좋은 말이오. 지극히 덕스러운 자는 외롭지 않소. 다시 한 말씀 해주시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으로 하여금 배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하십시오. 현명한 자는 항상 곁에 간언하는 자를 있게 합니다."

햇살이 좋아서

햇살이 좋아서

햇살이 좋아서

햇살이 좋아서

무작정 길을 걸었어

우연히 너를 만나게 될지 몰라서

햇살이 좋아서

너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냥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햇살이 좋아서

바람을 품고 하늘을 보았어

해맑은 미소로 반기는 네가 있더라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결에

따스한 너의 손길이 느껴져

햇살이 좋아서

너무 좋아서..

"

-가끔은 그렇게 살고 싶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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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불양파ㅣ海不揚波

해불양파ㅣ海不揚波

해불양파ㅣ海不揚波

○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다, 백성이 편안함

○ 海(바다 해) 不(아닐 불) 揚(날릴 양) 波(물결 파)

바다에 파도(波濤)가 일지 않음의 뜻으로,임금의 좋은 정치(政治)로 백성(百姓)이 편안(便安)함을 일컫는 말

바다에 작은 파도도 일지 않아 잔잔하다는 뜻의 이 성어는 임금의 선정으로 백성이 편안함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고대의 夏(하)와 商(상)을 이어 3代(대)를 이루는 周(주)나라의 成王(성왕) 때였다. 왕의 숙부인 周公(주공)이 어린 성왕의 즉위 때부터 섭정을 맡아 동생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제도문물을 정비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孔子(공자)는 그를 후세의 중국 황제들과 대신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인물로 격찬하며 주공을 꿈에 못 본 것이 몸이 쇠약해진 때문이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이러니 이웃 나라에서도 모두 우러러보고 찾아와 조아렸다.

유비무환ㅣ有備無患

유비무환ㅣ有備無患

유비무환ㅣ有備無患

○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 有(있을 유) 備(갖출 비) 無(없을 무) 患(근심 환)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뜻으로 ①미리 준비(準備)가 되어 있으면 우환(憂患)을 당(當)하지 아니함 ②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

說命(열명)은 殷(은)나라 高宗(고종)이 傅說(부열)이란 어진 재상(宰相)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政事)에 대한 의견과 그 의견을 실천하게 하는 내용을 기록한 글인데, 이 '有備無患'이란 말은 부열이 고종 임금에게 한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行動)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能(능)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功(공)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어느 해 鄭(정)나라가 송(宋)나라를 침략하자 송(宋)나라는 위급함을 진(晉)나라에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진의 국왕인 悼公(도공)은 즉각 魯(노) 齊(제) 曹(조) 등 10여개국에 이 사실을 통고하고 연합군을 편성했다. 진의 위강이 통솔한 연합군은 정의 도성을 에워싸고 송에서 철수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정나라는 재빨리 송 진 제 등 열두나라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북쪽 나라들의 이런 결속에 위협을 느낀 남쪽의 楚(초)나라가 정나라를 침공했다. 열세를 깨달은 정나라는 초나라와도 盟約(맹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이번에는 연합국측이 불만을 품고 정나라를 쳤다. 또다시 정나라가 화친을 요구하자 진(秦)나라는 마지 못해 이에 응함으로써 싸움은 끝났다.도공은 감사의 표시로 정나라에서 보내온 보물과 미녀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싸움에 지쳐있을 그를 달래주려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대쪽같은 위강이 그런 선물을 받을 턱이 없었다. 선물을 되돌려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도 위태(危殆)로운 때를 생각해야 하고 위태(危殆)로운 때를 생각한다면 언제나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居安思危 思危 則有備 有備則無患.』이 말을 전해 들은 도공은 새삼 위강의 남다른 식견에 머리를 끄덕이며 미녀들을 모두 정나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마고소양ㅣ麻姑搔痒

마고소양ㅣ麻姑搔痒

마고소양ㅣ麻姑搔痒

○ 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

○ 麻(삼 마) 姑(고모 고) 搔(긁을 소) 痒(긁을 양)

마고라는 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는 뜻으로,일이 뜻대로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신선전(神仙傳)》 마고(麻姑)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한(漢)나라 환제(桓帝) 때 마고라는 선녀가 무리들과 함께 수도 장안(長安)에 들어와 채경(蔡經)이라는 관리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마고의 손톱은 사람의 손톱과는 달리 길고 뾰족한 것이 마치 새의 발톱처럼 생겼다. 마고를 영접한 채경은 마고의 손톱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일 등이 가려울 때 저 손톱으로 긁는다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러나 채경의 이런 불경한 생각은 바로 선녀들에게 읽히고 말았다. 방평(方平)이라는 선녀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채경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방평은 곧 사람들을 불러 그를 끌어다 채찍질하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마고는 선녀이다. 너는 어찌하여 불경스럽게도 마고의 손톱으로 등을 긁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느냐.”

이와 같이 마고소양이란 힘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의 도움으로 자기의 원하는 바를 뜻대로 이룸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뜻이 확대되어 자기 일이 뜻대로 이루어짐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마고파양(麻姑爬痒)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