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일 토요일

독서상우ㅣ讀書尙友

독서상우ㅣ讀書尙友

독서상우ㅣ讀書尙友

○ 책을 읽음으로써 위로 옛 성현들과 벗한다

○ 讀(읽을 독) 書(글 서) 尙(높일 상) 友(벗 우)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책을 읽어 옛날의 현인(賢人)들과 벗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하편(萬章下篇)〉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맹자는 제자 만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을에서 가장 선한 선비라야 그만큼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으며, 나라에서 가장 선한 선비라야 그정도로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고, 천하에서 가장 선한 선비라야 그만한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다. 천하에서 제일 선한 선비를 벗하는데 만족하지 못해 위로 옛 사람을 논하기도 하니, 옛 사람의 시나 글을 읽으면서도 옛 사람을 알지 못하는가. 이로써 옛 사람이 살았던 세상을 논의하는데, 이것이 곧 위로 옛 사람을 벗하는 일이다."

맹자는 그 시대의 가장 훌륭한 선비와 사귀는 데 만족하지 말고 책을 통해 옛 성현들과 벗하라고 강조하였다. 책 속에서 옛 현인의 사상을 깨닫고 살아 있는 벗처럼 성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과전이하ㅣ瓜田李下

과전이하ㅣ瓜田李下

과전이하ㅣ瓜田李下

○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

○ 瓜(오이 과) 田(밭 전) 李(오얏 리) 下(아래 하)

오이밭과 오얏(자두)나무 밑이라는 뜻으로,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준말로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 즉, 남의 의심(疑心)을 받기 쉬운 일은 하지 말라는 말

당(唐)나라 목종(穆宗)이 어느 날 당대의 명필(名筆)인 유공권(柳公權)에게 「요즘 조정(朝廷)에서 시행(施行)하고 있는 여러 가지 조치에 관하여 불평(不平)하고 비난(非難)하는 일은 없는지요?」하고 물었다. 이에 유공권은 「폐하(陛下)께서 곽민(郭敏)이란 자를 빈령의 수령으로 보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비난(非難)이 자자하옵니다.」 하고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에 제왕(帝王)은 「그것은 왜 그런가? 곽민(郭敏)으로 말하면 상부(商父)의 조카이며 태황태후의 작은아버지로 항상 정직하고 속임이 없기에 작은 벼슬자리를 준 것이거늘 그게 무슨 그리 비난(非難)거리가 된단 말이요?」 하고 다시 물었다. 유공권이 「그동안 곽민(郭敏)이 세운 공으로 치자면 그런 정도의 벼슬자리는 과분(過分)하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하지만 곽민(郭敏)은 자기의 두 딸을 궁안에 들여 보냈기 때문에 그런 벼슬을 얻은 것이라고들 쑥덕거린다고 하옵니다.」 하고 대답(對答)했다.

이 말을 들은 목종은 「곽민(郭敏)의 딸을 입궁 시킨 것은 태황태후를 그저 예로 뵙도록 한 것이지 궁녀(宮女)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다.」 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이에 유공권은 정중히 「과전이하(瓜田李下)의 혐의를 어떻게 벗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하고 아뢰었다고 함

만사휴의ㅣ萬事休矣

만사휴의ㅣ萬事休矣

만사휴의ㅣ萬事休矣

○ 모든 일이 끝장났다

○ 萬(일만 만) 事(일 사) 休(그칠 휴) 矣(어조사 의)

만 가지 일이 끝장이라는 뜻으로,모든 일이 전혀 가망(可望)이 없는 절망(絶望)과 체념(諦念)의 상태(狀態)임을 이르는 말

원나라 때 황제의 명으로 편찬된 《송사(宋史)》 형남고씨세가(荊南高氏世家)에서 비롯된 말이다. 당(唐)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에는 5대10국(五代十國)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5대란 중원에서 흥망한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의 다섯 왕조를 말하고, 10국이란 지방에서 흥망을 거듭한 전촉(前蜀)·오(吳)·남한(南漢)·형남(荊南)·오월(吳越)·초(楚)·민(종족이름민)·남당(南唐)·후촉(後蜀)·북한(北漢) 등 열 나라를 말한다. 형남은 10국 중 하나로, 당말에 형남 절도사로 파견되었던 고계흥(高季興)이 세운 나라이다. 고계흥 이후 4대 57년간 형남을 지배하다가 송조에 귀순하였다. 고계흥에게는 아들 종회(從誨)와 손자 보욱(保勖)이 있었다. 종회는 보욱을 남달리 귀여워했다. 특히 보욱이 어려서부터 병약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종회의 사랑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종회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보욱은 안하무인일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허약하였으며, 음란하기까지 하였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안하무인에 버릇 없는 보욱을 보고 주위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쏘아본 적이 있는데, 보욱은 그저 실실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전해 들은 형남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爲萬事休矣)’ 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보욱은 자기 형에 이어 보위에 올라야 하는데, 이렇게 자부심도, 줏대도 없고 게다가 가치관마저 무너진 사람을 가지고는 나라의 운명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였다.

오늘날도 만사휴의는 도무지 대책을 세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일이 틀어졌을 때 체념조로 사용된다. 형남 사람들의 예견은 틀리지 않아, 보욱은 즉위하면서 바로 궁궐 증축의 대공사를 일으켜 백성을 괴롭히더니, 음란함이 극에 달해 기생들과 군사들을 풀어 혼음을 시키면서 그것을 보고 즐겼다 한다.

간담상조ㅣ肝膽相照

간담상조ㅣ肝膽相照

간담상조ㅣ肝膽相照

○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

○ 肝:(간 간) 膽(쓸개 담) 相(서로 상) 照(비칠 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곧 ① 상호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②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 자는 자후(子厚), 773~819)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 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큰개불알풀

큰개불알풀

큰개불알풀

이 름 : 큰개불알풀

학 명 : Veronica persica Poir.

과 명 : 현삼목

분 포 : 남부지방, 유럽

자생지 : 경작지 주변, 들판

크 기 : 높이 10-40cm

개 화 : 3-5월

꽃 말 : 기쁜 소식

유럽 원산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자라는 두해살이풀이다. 전체에 부드러운 털이 난다. 줄기는 가지가 갈라져서 아래쪽이 비스듬히 자라며, 높이 10-40cm이다. 잎은 아래쪽에서는 마주나지만 위쪽에서는 어긋나며, 난상 원형으로 길이 7-18mm, 폭 6-15mm이고, 가장자리에 끝이 둔한 톱니가 3-5개씩 있다. 잎 양면은 털이 드문드문 난다.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달리며, 하늘색, 지름 7-10mm이다. 꽃자루는 길이 1-4cm이다. 꽃받침은 4갈래로 갈라진다. 화관은 4갈래로 갈라지는데, 아래쪽의 것이 조금 작다. 열매는 삭과다.

-사진 : 임규동의 꽃사진세상-

♨ 좋은글 더보기 : iusan.com

한천작우ㅣ旱天作雨

한천작우ㅣ旱天作雨

한천작우ㅣ旱天作雨

○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 旱(가물 한) 天(하늘 천) 作(지을 작) 雨(비 우)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다.. 백성(百姓)이 도탄(塗炭)에 빠지면 하늘이 백성(百姓)의 뜻을 살펴 비를 내린다는 뜻을 나타냄

오래 가물다가 내리는 비는 慈雨(자우)다. ‘가뭄에 단비’다. 하지만 ‘넉 달 가뭄에도 하루만 더 개었으면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일에 지장이 있으면 고마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날씨에 대해 항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개개인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그럴 수 없다. 가뭄을 말하는 旱魃(한발, 魃은 가물 발)로 인해 백성이 굶주리게 되면 왕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주위를 살펴보고 몸을 청결히 하여 祈雨祭(기우제)를 올린다. 이런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얼마 뒤에는 실제 비가 내렸다.

가뭄이 들어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는 것이 이 성어다. 여기에서 가뭄 때 내리는 단비처럼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孔子(공자)를 학문을 이어 亞聖(아성)으로 추앙받는 孟子(맹자)가 한 말에서 비롯됐다. 그의 가르침을 정리한 ‘맹자’의 첫머리 梁惠王(양혜왕)에 나온다. 梁(양)나라는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 강국이었던 魏(위)나라가 도읍을 安邑(안읍)에서 大梁(대량)으로 옮긴 후부터 불린 이름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하고서 강조한 何必曰利(하필왈리),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등의 성어가 앞부분에 나온다.

양혜왕의 아들인 襄王(양왕)과 맹자의 대화에서 단비 부분이 들어있다. 천하는 어떻게 해야 안정되며 누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맹자가 답한다. ‘왕께서는 벼의 싹에 대해 아시는지요? 7, 8월 사이에 가뭄이 들면 말랐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먹구름을 만들어 시원하게 비를 뿌리면 다시 싱싱하게 자라납니다(王知夫苗乎 七八月之間 旱則苗槁矣 天油然作雲 沛然下雨 則苗浡然與之矣/ 왕지부묘호 칠팔월지간 한즉묘고의 천유연작운 패연하우 즉묘발연여지의).’ 油然(유연)은 구름이 무성하게 일어나는 모양, 沛는 비쏟아질 패, 일어날 浡(발)은 싹이 부쩍 자란 모습을 형용했다. 자비롭게 백성을 대하면 저절로 모여든다는 설명이다.

만전지책ㅣ萬全之策

만전지책ㅣ萬全之策

만전지책ㅣ萬全之策

○ 조금의 허술함도 없는 완전한 대책

○ 萬(일만 만) 全(온전할 전) 之(어조사 지) 策(꾀 책)

만전을 기하는 계책이란 말로,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 아주 완전한 계책이라는 뜻.

만전(萬全)이란 가장 안전함을 가리키는 말로 사기(史記) 한비자(韓非子) 등 중국 고전 여러 곳에서 두루 쓰이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유표전(劉表傳)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위(魏)의 조조(曺操)가 북방의 원소(袁紹)와 싸운 관도(官渡)의 싸움은 조조가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한판 승부로 평가된다. 당시 조조의 군대는 3만 명이었으나 원소의 군대는 10만 명이나 되었다. 조조는 한때 원소의 명장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죽이는 등 원소군에게 일격을 가했으나 수적 열세로 수세에 몰려 도읍인 허창으로 후퇴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군을 거느린 원소도 초기에 예봉이 꺾여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싸움은 소강 상태로 들어갔다.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원소는 유표에게 원조를 구하였다. 유표(劉表)는 당시 형주(荊州)에서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원소를 돕겠다고 하였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어느 한쪽을 도우려 하지 않고 싸움을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다못한 한숭(韓嵩)과 유선(劉先)이 다음과 같이 유표를 설득하였다. “조조는 반드시 원소군을 격파하고, 그 다음엔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관망만 하고 있으면 양쪽의 원한을 사게 됩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조조를 따르는 것이 현명한 만전지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유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뒤에 큰 화를 당하게 되었다.

여기서 만전지책이란 적절한 선택, 적절한 시간, 적절한 방법 등이 함께 갖추어진, 조금의 실수도 없는 가장 안전한 계책을 가리킨다.

한우충동ㅣ汗牛充棟

한우충동ㅣ汗牛充棟

한우충동ㅣ汗牛充棟

○ 장서(藏書)가 많음을 이르는 말

○ 汗(땀 한) 牛(소 우) 充(채울 충) 棟(마룻대 동)

수레에 실어 운반(運搬)하면 소가 땀을 흘리게 되고, 쌓아올리면 들보에 닿을 정도(程度)의 양이라는 뜻으로,장서(藏書)가 많음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의 명문가로 알려진 유종원(柳宗元)이 같은 시대(時代)의 역사학자 육문통을 위해 쓴 묘표(墓表)에 있는 말이다. 묘표란 죽은 사람의 사적과 덕행(德行)을 기리는 문장으로 돌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것이다.

「공자(孔子)<춘추(春秋)>의 해석을 둘러싸고 1000명의 학자(學者)가 온갖 주석을 하고 있지만, 비뚤어진 해석이나 다른 학파에 대한 비난(非難), 공격(功擊)만이 눈에 띈다. 더욱이 그런 패거리들의 저작만이 세상(世上)에 횡행하고. (其爲書 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 그 저서(著書)나 장서의 엄청남이란, 소장하면 건물을 꽉 메우고, 꺼내어 운반하게 되면 수레를 끄는 마소도 그 무게에 땀을 흘릴 정도다.)라는 상태다.

마이동풍ㅣ馬耳東風

마이동풍ㅣ馬耳東風

마이동풍ㅣ馬耳東風

○ 말의 귀에 동풍이 지나가다, 말을 흘려듣다.

○ 馬(말 마) 耳(귀 이) 東(동녘 동) 風(바람 풍)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批評)이나 의견(意見)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

알아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을 말할 때 관련 속담이나 성어가 많다. ‘쇠귀에 경 읽기’, ‘말귀에 염불’,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다’ 등을 번역이나 한 듯이 들어맞는 말이 牛耳讀經(우이독경), 對牛彈琴(대우탄금)이다. 가을바람이 귀를 스쳐갔는데도 무엇이 지나갔는지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秋風過耳(추풍과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비슷한 뜻의 많은 성어 중에서도 말 귀로 동풍이 스쳐간다는 이 말이 가장 유명한데 출처가 唐(당)나라 李白(이백, 701~762)의 시구에서 나와 가치를 높인다. 詩仙(시선)이라 불리는 이백은 그러나 혼돈의 시기에 태어나 이상을 펴보지도 못하고 술과 시로 보낸 불운의 시인이었다. 이백은 王去一(왕거일)이란 지인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불우한 처지를 적어 보낸 시 ‘寒夜獨酌有懷(한야독작유회)’에 공감했다. 겨울 밤 밝은 달 아래 독작을 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지금 세상은 당시 왕족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鬪鷄(투계)의 기술도 없고, 변경의 싸움에서 작은 공을 세워 충신이나 된 듯이 날뛰는 세상에서 흉내도 낼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백은 답한다. ‘북창에 기대 앉아 시를 읊고 부를 짓는다지만(吟詩作賦北窓裏/ 음시작부북창리), 수많은 말이라도 술 한 잔 가치도 없네(萬言不直一杯水/ 만언부직일배수), 세상사람 이를 듣고 머리를 흔드는 것이(世人聞此皆掉頭/ 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이 말귀를 스치고 지나는 듯하구나(有如東風射馬耳/ 유여동풍사마이).’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훗날 올바른 평가를 기다리자는 당부도 곁들였다.

득어망전ㅣ得魚忘筌

득어망전ㅣ得魚忘筌

득어망전ㅣ得魚忘筌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 得(얻을 득) 魚(고기 어) 忘(잊을 망) 筌(가리(고기 잡는 기구) 전)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

"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

위의 글에서 망전(忘筌)이나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모두 시비(是非), 선악(善惡)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득어망전이란, 진리에 도달하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불경의 하나인 《사유경(蛇喩經)》에 보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집착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뗏목의 비유를 들겠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니 그리 가야겠다 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이 나그네는 그 뗏목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것이 아니었으면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므로 은혜를 생각해 메고 가야겠느냐? 아니면, \이 뗏목 때문에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이용하도록 여기에 두고 나는 내 갈길을 가자\ 하겠느냐. 이 나그네는 뗏목을 두고 가도 그의 할 일을 다한 것이 된다. 너희들도 이 나그네가 뗏목을 잊은 것처럼 궁극에는 교법마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자》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절대 경지에 들어서면 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절대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마저 잊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득어망전이란, 자기의 뜻한 바를 이룬 후에는 그 수단이나 과정에 대하여는 애착을 갖지 말라는 것인데, 오늘날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처럼 배은망덕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