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1편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1편
충렬왕(忠烈王:1236~1308, 재위 1274~1308)은 원나라 황실과 처음으로 혼인을 맺은 고려의 왕으로 원 세조(쿠빌라이칸)의 사위이다. 충렬왕은 원종의 맏아들이자 정순왕후 김씨 소생으로 1236년에 태어났다. 1267년 태자로 책봉된 이후 원나라에 입조하여 연경(북경)에 머무르다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충렬왕과 원 공주와의 혼인은 1271년(원종 12) 부왕인 원종이 추밀원사 김연을 원 세조에게 보내서 정식으로 청혼하였고 그 해 6월 충렬왕은 세조를 알현하고 혼인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6개월 후 충렬왕은 천여 근의 금을 마련하여 원나라로 가서 1년 반쯤 지난 뒤인 1274년(원종 15) 5월에 원 세조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다.
충렬왕이 살았던 시기는 몽고가 원(元)이라고 국호를 바꾸고 대제국을 건설한 시기였다. 세조 쿠빌라이는 몽고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고려 충렬왕의 장인이었다. 쿠빌라이는 칭기즈칸이 물려준 대제국을 잘 다스리고 더 넓힌 인물이다. 원나라에 굴복한 고려는 그들의 명령을 따르는 일개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원 황실과 고려 왕실간의 통혼으로 고려는 원의 사위의 나라가 된 것이다. 원래 고려왕들은 후비(后妃)를 왕실이나 귀족가문에서 맞아들였으나, 몽고와의 오랜 항쟁이 끝나고 나서 고려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다. 원이 고려왕을 부마로 삼고자 한 이유는 고려를 감시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가 컸다. 이후 고려왕의 묘호(시호)는 조(祖)나 종(宗)이 아닌 원 황실에 충성을 한다는 의미로 충(忠)이라는 돌림자를 사용해야 했다. 원제국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처음으로 치러진 대륙국가와의 왕실 혼인으로, 고려는 역사의 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배경으로 역대 권신들에 억눌려 오던 왕실의 지위는 회복, 강화될 수 있었으나 자주성을 잃은 종속국으로 전락하여 이후 원나라의 많은 간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충렬왕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직후 왕녀인 정화궁주와 혼인하여 장성한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국대장공주가 고려에 와서 몽고양식의 생활을 하고 사사로이 부리는 사람도 원나라에서 데려옴으로써 고려 왕실에는 몽고의 풍속·언어 등이 퍼지기도 하였다.혼례를 치르고 두 달 뒤 부친인 원종이 승하하자, 충렬왕은 왕위 승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충렬왕에게 시집 온 제국대장공주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충렬왕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주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가 충렬왕을 이은 충선왕이다. 고려 왕실 최초의 혼혈 왕이기도 한 충선왕 이후로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에서 일명 뚤루게(禿魯花)인 질자(質子:인질로 보낸 아들)로 성장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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