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1편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1편
한 나라의 지존(至尊)이 국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부인인 왕비는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 보장되는 누구나 부러워할 위치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일반 서민이나 반가(班家)의 여인들보다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왕비는 왕의 내조자인 동시에, 궁궐 여인들로 조직된 내명부(內命婦)와 왕실소속 여성이나 관료들의 아내로 조직된 외명부(外命婦)의 수장(首長)이었다. 왕비가 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세자빈 또는 종친의 부인으로 간택되었다가 남편이 왕위에 오르면서 같이 격상되는 경우, 처음부터 왕비로 간택된 경우, 후궁이었다가 왕비가 죽고 새로운 왕비가 되는 방법이 있다.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중전이 되고, 아들이 대를 이어받아 대비마마가 되는 것이 가장 정통적이고 정상적인 순서이다. 세자빈으로 간택되는 경우 대개 10대의 나이에 간택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정작 이 코스를 거쳐 조선의 왕비가 된 인물은 6명에 불과하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비 폐비 신씨, 인종의 비 인성왕후 박씨,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 경종의 비 선의왕후 어씨다. 그리고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에서 왕비로, 그리고 아들 숙종이 왕이 되면서 대비의 위치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세자빈에서 왕비를 거쳐 대비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고, 그 삶과 운명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반증(反證)이 될 것이다.
조선에 27명의 왕이 재위했는데, 이처럼 정통 코스를 거친 왕비가 소수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자 교체 또는 정변과 반정 등 왕위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도 적지 않았고, 후궁의 득세나 외척의 모반사건 등으로 폐위와 사사(賜死)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적장자가 아닌 차남이나 손자의 즉위, 여기에 더해 후궁 소생의 왕들이 즉위하는 상황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녕대군의 세자빈과 같이 세자가 교체되는 바람에 대군 부인으로 강등된 사례도 있고, 인수대비로 널리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는 남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세자빈의 지위를 잃었다가 나중에 자신의 둘째 아들이 성종으로 즉위하면서 대비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소현세자의 빈 강씨는 남편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으로 세자빈 지위를 박탈당함은 물론 사약까지 받았다. 혜경궁 홍씨 역시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자빈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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