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독립운동가 1편
■ 여성독립운동가 1편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우리는 거의 유관순 열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젊음을 바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영화 ‘암살’의 흥행 이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독립운동가들은 많이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두세 배 분량의 일들을 감당해 내야만 했다. 독립을 위해 나섰지만 그들은 여전히 엄마, 아내, 며느리이자 주부였다. 자녀를 양육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가사노동과 농사일을 독립운동과 병행했다.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둔 여성들은 남편을 대신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밝혀내 자랑스러운 그들의 활약상을 우리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광복 제73주년을 맞이하여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을 새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들 중 26명이 1차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우당 이회영선생의 아내 이은숙여사,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의사를 숨겨줬다가 고문을 당한 김아기여사, 독립운동가 이규풍·이규갑 형제의 어머니 박안라여사, 만세 시위를 벌여 투옥됐던 배화여학교·수피아여학교·기전여학교 학생들,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여성들이 포함되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훈장과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 4,329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1.9%인 272명에 불과하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고,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해서 기록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는데, 실로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일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에 서양의 근대식 학교가 세워지고, 그때부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체계적인 학교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교육을 받으며 의식에 눈을 뜬 여성들은 ‘일본에 대항해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혔다. 그들 중에는 남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고, 남성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독립군 군복과 화약을 만들고, 도피자를 숨겨 주거나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독립운동가에게 식사를 준비해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들은 공식적인 문서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의 대우를 받는 여성이 드물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성들이 했던 활동들도 독립운동이 잘 진행되게 하는 데에 꼭 필요했다는 것이다. 훈장 하나 받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 한 분 한 분께 마음으로나마 훈장을 달아 드리고 싶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