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3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3편
윤희순의 시댁에는 의병 활동가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시아버지는 집에 머무는 날이 드물었다. 규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갑갑하고 좀이 쑤셨던 며느리 윤희순은 어느 날 남장(男裝)을 하고는 시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아버님, 저도 조선 사람이니 의병이 되고자 합니다.” 유교 윤리에 투철했던 유홍석은 펄쩍 뛰었다.
“얘야,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규중 여인으로 어찌 나를 따르겠다는 것이냐. 전쟁터는 여자들이 갈 곳이 못 된다. 내가 지금 나가면 생사를 알 수 없으니 너는 남아서 조상을 잘 받들고 자손을 잘 길러서 애국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나라가 없으면 어찌 애국이 있겠습니까?”
“허어, 혈육을 팽개치고 어찌 미래가 있겠느냐?”
시아버지의 추상같은 말에 윤희순은 마음속으로 끓어오르는 의기(義氣)를 접어야만 했다.
윤희순의 집안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에 이미 돌아가셨고, 시아버지와 남편은 일 년에 열 달은 나가 있는지라 여자 혼자서 살림을 꾸려가는 상황이었다. 오래 함께한 하인 내외가 간간이 돌봐주기는 했으나 생계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숯을 구워 팔며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출타한 어느 날 마을에 의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몹시 굶주린지라 마을 사람들에게 밥을 해 달라고 청했다. 당시엔 의병을 돕는 일도 중죄(重罪)였기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윤희순은 제사를 받들기 위해 숨겨놓은 쌀 세 됫박을 털어서 밥을 지었다. 전장(戰場)의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마음으로 상을 차려 그들에게 올렸다.
윤희순은 마을 여인들에게 안사람들도 의병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지어 부르며 의병대를 조직하자고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집안 남자들이 의병을 한다고 모두 나가 버리니 며느리가 드디어 미쳤어.” 그렇게들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동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안사람 의병가>는 그렇게 하나 둘씩 따라 부르기 시작해서 인근 동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행가’가 되었다. 10년간의 노력 끝에 마을에서 ‘안사람의병대’가 조직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던 무렵이었다. ‘숨은 의병’으로서 놋쇠를 모으고, 부족한 유황을 대신해 소변을 달여 화약을 제조하여 의병이 쓸 탄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만든 무기로 이 지역 의병들은 상당한 전력을 갖추고 일제에 타격을 입혔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