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6일 토요일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3편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3편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3편

19세기 들어 양반 계급의 여성들은 족두리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가체의 대용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기생들은 계속해서 가체를 사용하였다. 여러 가지 장식을 포함한 가체의 무게는 보통 3~4kg정도이다. 사극에 출현하는 여배우들이 가체의 무게에 따른 고통을 토로하기도 한다.

가체가 비싼 건 일단 가장 중요한 재료인 머리카락부터도 특정 지역 남자들이 몇 년 간 잘 관리하며 길렀다가 팔았는데 그래야만 품질이 좋은 가체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가체는 진짜로 급한 일이 아닌 한 여자들이 목숨만큼 귀한 자기 머리를 잘라 파는 일은 드물었고, 대부분 남자들이 머리를 잘라 팔았다고 한다.

공급도 적지만 송진, 연지, 소금, 참기름 등 다양한 성분 분말로 만든 용액에 수거한 머리칼을 담가 곧게 펴고 탈색했다. 당연히 이것도 며칠이 걸린다. 곱슬머리와 직모, 갈색과 검은색 등 모질과 색이 제각각이었기에 따로따로 검정색으로 탈색해야 했다.

가체는 ‘가체장’이라고 불리우는 장인들이 만드는데, 워낙 비싸고 재료비부터도 비싸기에 비싼 가체를 만들자면 30년 이상 경력를 인정받은 고수 장인들의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다. 66세 영조와 15세 정순왕후의 혼례를 기록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 따르면, 가체를 만드는 가체장은 당주홍, 홍합사, 황밀, 송진, 주사, 마사, 홍향사, 소금, 참기름 등 다양한 성분의 분말로 만든 용액에 수거한 머리칼을 담가 곧게 펴고 탈색하여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조선 남성은 상투를 맵시 있게 틀려고 정기적으로 정수리를 깎았다. 이를 ‘베코친다’ 고 불렀다. 남성은 ‘베코를 쳐’ 맵시를 더했고, 여성은 그 머리카락으로 가체를 얹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가체를 만드는 데는 죄인이나 승려의 머리카락도 썼다. 가체는 단순히 빗으로 빗고 길게 잇대며 땋는 게 아니었다.

이른바 검은 구름처럼 풍성하면서 윤기 흐르는 가체를 만들려면 다양한 용액을 다루는 기술과 함께 유행에 맞춰 땋는 기술도 필요했다. 먼저 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머리 타래를 만들었다. 이어 ‘말이 쓰러지는 듯’ 기운 모양새로 땋아 촛농으로 고정했다. 이렇게 기본 모양새를 잡은 뒤 광택을 내면 검은 구름처럼 풍성하면서도 윤기 흐르는 가체가 완성됐다.

가체는 체괄전(가발전문매장) 에서 팔거나 여쾌(뚜쟁이) 수모(手母:미용사)가 방문 판매했다. 가체는 고가에 거래됐다. 재료가 귀했고 수준 높은 제작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크기 경쟁까지 더해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갈수록 높고 풍성한 가체가 유행하자 커진 크기만큼 가격은 치솟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