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으로 산다는 것 5편
■ 왕으로 산다는 것 5편
세자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면 의관을 정제하고 왕과 왕비 또는 대비에게 문안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안인사를 다녀오면 아침식사를 하고 세자시강원의 관료들의 지도로 바로 조강(朝講:아침공부)을 시작한다. 아침공부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주강(晝講:낮공부)과 석강(夕講:저녁공부)을 이어서 하였다.
석강이 끝나면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웃어른에게 인사하러 간다. 이것이 공식적인 세자의 일과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화 없이 계속 반복된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거나 그밖에 말타기, 활쏘기, 붓글씨 등 육예(六藝)를 연마하였다.
《주자가례》에 의하면 관례(冠禮:어른이 되는 예식)는 15~20세 사이에 치르도록 되어 있으나, 세자는 이 규정을 무시하고 원자책봉 후에 곧바로 관례를 행했다. 이는 원자로 책봉된다는 사실 자체가 성인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관례는 유교식 성인의식인데, 어른의 표시로 관(冠)과 성인복장을 착용하게 하고, 이름과 평생 명심해야 할 훈계 내용을 고려하여 자(字)를 지어준다. 관례를 행하는 장소는 대궐 밖의 나이 많은 종친 주인집이다. 관례가 끝나면 이어서 왕에게 인사하고 종묘에 고했다. 혼례는 대체로 10세 안팎인 세자시기에 치렀다. 혼례를 치른 세자는 정부인인 세자빈 이외에 공식적으로 소실을 둘 수 있었다.
세자는 예비왕일 뿐이다. 따라서 세자로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주제를 지켜야 한다. 세자가 정치에 간여하거나 인사에 개입하게 되면 바로 삼사 관료들의 탄핵이 뒤따르게 된다. 또한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자는 아들이 아니라 정적(政敵)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세자가 정치에 간여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없다. 그러나 세자가 대리 청정하는 상황이 있기도 한다.
첫째는 왕권에 위협을 느낀 왕이 마지못해 대리청정을 명하는 경우이다. 계속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발발하면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자가 대리청정하거나 왕이 전위(傳位)하겠다는 경우가 있다. 임진왜란 때의 광해군과 영조 때의 사도세자, 순조 때의 효명세자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때 세자의 입장은 몹시 위험하다.
모든 영광은 왕에게 돌아가지만 반대로 조금의 허물이나 실정이 있으면 세자의 책임이 된다. 이와 달리 노년의 왕을 대신하거나 병중의 왕을 돕기 위해 대리청정을 할 때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세자의 입장에서는 미리 정치를 경험하는 셈이 되고, 왕도 왕권에 부담이 되지 않는 한 굳이 허물을 찾지 않는다. 세종의 경우 말년에 격무(激務)를 덜기 위해 세자(후의 문종)에게 약 5년간 대리청정을 시켰다.
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중에 왕을 대신하여 왕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지만 전권(專權)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세자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중요사항을 일일이 왕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한다. 또한 신하들도 왕과 세자 사이에서 처신을 조심하여야 한다. 비상사태가 해결되면 대리청정은 취소되고 세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